기후변화와 전남 해양환경의 위기 / 갯녹음(백화현상)
바다 살리기
전남 바닷속도 백색공포
서남해안 해역 44곳 수중탐사
신안 홍도 등 백화현상 진행중
해조류 사라지며 생태계 교란
"전남 서남해안의 바다속 암초가 눈에 띄게 회백색으로 뒤덮여지고, 성게 등 조식동물 개체수가 늘어나 심각한 상황입니다."
전남도 용역 수행을 위해 서남해안 바다 속을 샅샅이 들여다 본 다이버 정영호씨는 서남해안 해저에 대해 '위기 상황'으로 규정했다. 바다 속 암반에 부착해 서식하고 있는 해조류가 성게ㆍ고동류 등 포식자들에 의해 거의 사라지고 있음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전남 서남해안 해역을 여수에서 영광까지 4개권역으로 나눠 갯녹음 발생 의심이 되는 44곳을 잠수, 탐사했다. 정씨가 탐사한 44곳은 권역별로 20곳의 어촌계를 지정, 설문조사를 실시해 이 결과를 기초로 갯녹음 발생 의심 지역으로 선정된 곳이다. 최종 용역 결과는 이들 44곳을 대상으로 2차 탐사가 끝나는 7월중 발표될 예정이다.
서남해안 바다가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다. 갯벌에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파래류의 번무뿐만 아니라 해양 생태계 구조 교란 현상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바닷 속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수온이 높아지면서 해파리 등 아열대성 유해생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바다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국립수산원 조사에 따르면 1968~2006년 사이 한반도 주변 해역의 수온은 동해 0.8도, 남해 1.04도, 서해 0.97도씩 상승했다.
또 서해안에서도 해조가 사라지고 페인트 칠한 듯 하얀 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해조가 사라지는 것은 바다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갯녹음 현상이다. 해조류 서식공간이면서 바닷속 고기집 역할을 하는 암초가 회백색으로 변해, 백화(白化)현상이라고도 부른다.
문제는 전남 서남해안 해역도 갯녹음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백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1990년대 말 경북 영덕과 포항 등 동해안 지역까지 확대되고, 지금은 제주도 전체와 거제, 마산, 부산까지 백화현상으로 바다밑이 초토화됐다. 여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 갯녹음 안전해역으로 여겼던 전남 서남해안의 거문도, 신안 홍도 등까지 확산 추세에 있어 이젠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준다.
지난 4월 남해수산연구소의 전남도 용역 중간보고에 따르면 서남해안 44곳을 수중 탐사한 결과 대부분 지역에서 갯녹음이 진행되고 있거나 징후가 있었다. 이들 해역의 갯녹음 현상은 대체적으로 제주나 동해 등지에서 발견된 것처럼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 않고 군데군데에서 확인됐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현재 진행중이라는 점에선 심각하다.
해역별로 보면 제주도와 가까운 여수의 경우 소리도는 물론 남면 유송리 함구미(용머리)의 상층부에 거의 해조류가 없을 정도로 갯녹음 현상이 심했다. 여수 자봉, 여수 돌산읍 죽포에서도 갯녹음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진도 모도, 읍구, 관매도, 가사도, 완도, 장흥 해역의 수중에서도 백화현상이 조금씩 발견됐다.
또한 난류 쿠루시해 영향을 받는 고흥 나로도도 하층부에 성게들이 많아 이곳도 갯녹음으로부터 안전치 않음을 보여줬다.
고흥 나로도의 상황은 20년동안 잠수부를 해온 김남철(고흥 나로도)씨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김씨는 지난 12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나로도의 봉남부락, 봉호마을 해역뿐만 아니라 도화쪽의 활개바위 바다밑에 성게와 불가사리들이 암반층에 대규모로 서식해 해조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성게의 경우 한 곳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바다 해역을 돌아다니면서 먹잇감을 닥치는대로 해치워 심각하다. 그런데 마땅한 대책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갯벌이 많은 서해안의 신안ㆍ영광 해역은 전체적으로 깨끗했으나, 흑산도의 깊은 바다에서는 갯녹음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 갯벌이 많고 조류 이동이 활발한 서해안에서 백화현상이 나타나면, 거의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고, 훨씬 심각해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갯녹음의 확산은 어패류 산란 및 서식장, 연안 어족자원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바다 속 먹이사슬의 1차 생산자인 해조류가 사라지면 먹이사슬 자체가 파괴되는 것은 자명한 수순이다.
조사에 의하면 성게 등 저식동물들이 미역 포자를 먹어치워 생산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거나 조피볼락 등 어패류 서식도 20~30%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갯녹음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쿠루시해 난류 확산과 염분 변동에 따른 영양염 부족, 성게 등 조식동물 증가 등의 영향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연안 개발로 인한 바다오염도 해조류의 소실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전남 서남해안의 바닷밑이 이렇게 악화되고 있음에도 행정 당국을 비롯해 어민들은 이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전남도에서는 갯녹음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고, 도내 일선 시군에선 갯녹음 현상 자체를 알지 못해 어민 교육, 예방 홍보 등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경북이나 제주 등지에서 10여년 전부터 갯녹음 연구를 해온 것과는 달리 전남도의 경우 지난해부터 본격 조사에 들어가 현황 파악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전남대 서태호 박사(양식해양생물학전공)는 "바닷속에서 갯녹음은 진행 중이어 멈추게 할 순 없지만 노력에 따라 진행정도를 늦추거나 갯녹음 발생지역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갯녹음 발생 지역의 면적과 발생 원인이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용규 기자(사진=남해수산연구소 제공) / 전남일보에서 옮겨 왔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