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

방주호 편지(281)ㅣ방주7호 김치수 목사(여자대동교회)
		엊그제 불어온 하늬바람에 연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올해도 그만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네요. 슬슬 한해를 돌아보고 정리해야 하는 압박감이 마음을 조금은 무겁게 합니다. 이런 때에 추수감사주일을 앞둔 것이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싶습니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는 것은 무엇보다 감사하지 않고 지나친 일들을 새겨보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지요. 한해를 돌아볼 때 제게는 너무도 분명하게 감사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해마다 사순절을 거쳐서 부활 주일이면 저는 늘 은근한 기대를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마다 부활 주일이면 우리 작은 교회에 어김없이 주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는 사건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순절을 보낼 때쯤이면 이번엔 어떤 선물을 주시려나 하는 설레임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곤 했습니다. 부활절을 앞둔 성금요일이 제게는 그 설레임이 절정에 이르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녁에 드리는 성금요일 예배는 늘 정성이 더 기울여지곤 합니다. 올봄에도 그렇게 사순절을 보내고 마침내 부활절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흐리던 날씨조차 아주 쾌청해져서 기대감이 더 높아졌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도 말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난 뒤 광고 시간이었는데 한 분이 급한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오랫동안 지병을 앓고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위급한 상황이어서 급히 도선에 실려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분의 부인이신 할머니 집사님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분이 숨을 거두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급히 채비를 하고 교인들과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돌아가신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우리 할머니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렇잖아도 나이가 많아서 노환에 시달리는 집사님이기에 상심이 더더욱 크셨으리라 짐작하면서 장례 일로 해서 건강이 악화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지요. 장례식장에서 만난 집사님은 저를 보고는 그런 제 걱정과는 달리 환한 얼굴로 다가와서 제 손을 붙잡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에게 그날 아침 있었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고인은 그날 자신이 임종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이 집사님에게 채비를 차리게 하고 나서 고통 없이 운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이 신기하게도 미리 준비된 듯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집사님은 하나님이 남편을 불러가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늘 힘이 없고 수심이 가득 하던 집사님은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장례식 내내 문상객들에게 그 일을 얘기하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대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초대교회부터 시작해서 오늘의 한국교회에 이르기까지 부활하신 주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중에는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을 증거한 순교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올해 부활 주일에 하나님은 외적으로는 작은 섬의 작은 교회에 지나지 않는 우리 교회에 그런 부활의 증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나이 많고 병에 시달리던, 연약하기만 하던 우리 할머니 집사님이 남편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도 넘어서는 부활의 세계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만난 것입니다. 장례를 마친 뒤에 시내의 자녀들 집에 가 계셨던 할머니 집사님은 얼마 뒤에 다시 섬으로 돌아오셔서 주일 예배 때마다 할머니의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저는 남몰래 그 자리를 증인석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모든 자리가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는 증인석이 아닌가 싶네요. 이번 추수감사주일예배는 우리를 증인석으로 불러주신 주님을 향해 넘치는 감사의 마음을 드리는 시간이기를 기도합니다. // - 김치수(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