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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주11호] 섬에 사는 한 영혼을 기다리며 울며 씨를 뿌리다
  글쓴이 : 최경숙     날짜 : 2018-01-21 16:24     조회 : 2694    

방주호 편지(428)ㅣ방주11호 최경숙 전도사(흑일교회)






섬에서 살다보니 전에 없었던 새 길이 계속 만들어집니다. 부둣가에서부터 이어져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이 길은 그렇게 조금씩 길어지고 길어져서 언젠가는 섬의 앞 면을 다 이을 듯 보입니다.

저희가 처음 올 때가 생각이 납니다. 햇볕은 좋았지만 바람이 불었고, 물이 많이 빠졌을 때인 썰물시간에 이사를 오는 바람에 그때는 길이 없었던 모래 사장을 걸어서 짐을 나르며 얼마나 힘이 들었었는지 모릅니다. 바다 물때가 뭔지도 모르고 들어간 저희 부부에게 섬이 주는 선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다 커버린 저희 아이들은 바다와 모래사장을 처음 보고는 정신없이 구르며 놀았습니다. 모래밭은 빛을 받아 반짝였고 아이들의 눈에 그것이 너무도 예뻐 보였다고 했습니다. 벌써 30여 년 전 일입니다.

교회는 동네 맨 왼쪽 바닷가 끝에 위치해 있어서 길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저 사람 다니는 좁은 논두렁 폭 만큼의 흙길이었습니다. 그런 이곳까지는 물론 해변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도록 길이 뚫렸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이미 폐교된 지 20년이 지났고, 신나게 공을 차고 잔치도 있던 운동장과 학교는 풀이 잔뜩 우거져서 숲이 되어버렸습니다. ‘책 읽는 소녀상’과 ‘생각하는 로뎅상’은 한쪽 켠에서 엉컹퀴의 친구가 되어 있습니다.

폐교를 지나 시작되는 마을의 집들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단장하고 좋게 바뀐 집들이 이어집니다. 옛 집을 허물고 새 집으로 바꾼 곳, 밭 자리에 새 집을 지은 곳, 있던 집을 잘 단장하고 수리하여 사는 집, 주인이 바뀐 집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힘들었던 공사가 지금은 가능해졌으니 새집들이 이제는 곳곳에 훤히 들어옵니다.

이 섬에서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사시던 어른들은 어느 덧 나이가 들어 이 섬을 떠납니다. 흑일도하면 떠오르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한 분씩 사라져갑니다. 없던 게 생기고, 있던 곳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새로운 얼굴과 함께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늘어갈 수록 세월의 흐름을 느낍니다.


▲ 예전에는 없던 길이 지금은 해변 먼 곳에까지 정돈이 잘 되어 있다(왼편). 20년 전의 추억 속에서만 남아있는 초등학교, 앞줄 양쪽 아이가 우리집 아이(오른편).

▼ 지금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남편과 서화도에서 할머니와 함께 예배를 드리던 모습(2007년).


다른 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은 섬들이 계속 유지되고 이어져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마도 바다와 관련한 어업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만들지 않은 바다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일 것입니다. 바다가 살아있는 한 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에게는 여러 사연이 있습니다. 한 때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교회를 함께 다녔던 이들이 떠나갈 때에 그 마음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떠났지만 도시가 아닌 섬이기에 한 동네에서 살아가면서 교회 성도에서 동네 이웃주민으로 바뀌어 함께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선 사람들은 어쩌면 교회를 아예 나오지 않았던 주민들보다도 교회로 나오게 하기가 더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큰 돌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어려워 보입니다.

먼저 떠난 남편 목사님과 함께 있을 때보다 지금 혼자 겪게 되니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을 더 찾게 됩니다. 한 명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지는 저희와 같은 사역지에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함을 실감합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함께하는 성도들에게 참 고맙고 또 그들이 귀합니다. 흑일도 교회와 이웃 무교회 섬들을 섬기면서 힘든 상황에 부딪히기도 하고, 세월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저의 쇠약함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기도의 자리일 것입니다.

열매가 눈에 보이면 좋겠지만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에도 이 섬에서 저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나의 힘과 의지가 아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세상 기준의 잣대로 보며 이 사역을 평가하며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의 숫자와 보이는 결과물이 하늘나라 열매의 전부라면 저는 바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니며 여기에 심겨진 수많은 씨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거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꽃이 피지 않고, 열매가 잘 맺히지 않는 곳에 자리를 지키는 것은 이 일이 이 세상의 수익 경영을 이어가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도 울며 씨를 뿌리는 자입니다. 이 곳에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연약하면 연약한대로 살면서 그들과 같이 늙어가면서 기도하며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언제 거두게 될지 모르는지라 믿음이 필요하고 주님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한 마리의 양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이야기를 하시던 예수님에게 한 마리의 양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비교할 때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 한 영혼을 찾아다니시는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미약한 사역지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아니라 단 한 명이 있더라도 예수님이시라면 기다리셨을 것입니다. 열매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도 지키고 계셨을 것입니다. 굳은 심령으로 돌이키지 않아 포기할만한 곳이라도, 그 곳이 오지 깊은 구석진 땅이든지,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인적이 드문 곳이든지, 사막을 건너 있든지, 산을 넘어 있든지, 바다를 건너가 있든지, 섬에 있든지, 단 한명을 기다리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예수님이라면 그러셨을 것입니다.//
- 최경숙(한국섬선교회 ▼)






  이광운
이 코멘트에 대하여...   18-01-26 08:44 
샬롬
평강 의  주님이  함께하시며
복주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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