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1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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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이름 : 거문도 (전라남도 여수시 소재)
  교회수 : 1     주민수 : 524     조회 : 27647    


거/문/도 · 동/도· 서/도


큰 학자와 백도가 있는 섬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는 동경 127°11′, 북위 34°에 위치하며
면적 0.42㎢, 해안선 길이 3.7㎞, 인구 737명(2013년)이다.
동도는 동경 127°19′, 북위 34°02′에 위치하며
면적 3.42㎢, 해안선 길이 12.5㎞, 인구 323명(2013년)이다.
서도는 동경 127°18′, 북위 34°01′에 위치하며
면적 7.77㎢, 해안선 길이 26.9㎞, 인구 833명(2013년)이다.


'남해안의 비경'이라 일컫는 거문도는 여수 남서쪽 삼백리. 여수와 제주를 잇는 항로의 중간 해역에 있다. 서남쪽으로 동지나해를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일본 구주의 오도열도를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 사면이 큰 바다에 둘러싸여 있지만 섬 세 개가 원을 그리듯 모여있어 섬 안으로는 파도 없는 천연의 양항이다.

거문도는 100여 년 전까지도 삼도라 부르던 곳이다. 삼도란 동도, 서도, 고도의 3개 섬을 이르는 군도 명으로 삼산면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동도는 면적이 3.04평방km로 해안연장이 10.5㎞에 달하며 삼도 중 가장 높은 망향산(246m)이 있다. 서도는 면적이 6.89평방㎞로 삼도 중 가장 큰 섬이며 해안선 길이도 24㎞에 달한다. 이 두 섬 사이에 끼어 천혜의 만을 형성한 고도는 면적으로는 1.11평방㎞에 불과해서 가장 작은 섬이지만 면소재지와 면 단위 기관이 몰려있어 흔히 삼도를 대표해서 거문도라 불려온다.

거문도에 사람이 살게 된 때는 아득한 옛날부터로 전해진다. 1967년 동도 죽촌리에서 마제석걸 2개와 석총 고려고분 3기가 발견되었으며, 1976년 서도리에서 당나라 때의 오주전(五鑄錢)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오랜 옛날부터 이 고장에 사람이 살았다고 여겨진다. 일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후 장흥사람 추씨(秋氏)가 입도하였고, 이로 인하여 거문도에는 장흥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상거래도 주로 장흥하고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에는 세종 22년경(1440) 고흥에 속하면서 삼도라고 불리고 풍헌을 두어 행정을 수행하였다. 한때(숙종 37∼철종6) 통영에 속하기도 했지만 다시 고흥에 이속되어 별장을 둔 간역수군진으로 있다가 영국함대가 불법점령사건을 일으킨 뒤 1888년 수군첨절제사겸 수방장이 임명되는 수군 진으로 격이 높아졌다. 그 후 20년 뒤인 1908년에 삼도를 중심으로 한 면이 신설되고 초도, 손죽도, 거문도의 3개 섬 무리를 다스리는 면이라는 뜻으로 삼산면이라 명명하고 동산군에 속했다가 군이 없어지던 1914년 여수군 소속이 되었다. 여수군이 1949년 여수부로 승격되고, 여수군이 여천군으로 개칭됨에 따라 삼산면도 여천군에 속하였으며 지금은 여수시로 있다.


거마도에서 거문도로
거문도의 원래 이름은 고도였다. 그러나 이것말고도 여러 이름이 더 있는데 왜구의 침범에서 지어진 왜도. 거문도사건 이전 영국이 제주 근해를 측량하면서 그들 해도에 표기한 해밀톤, 이 섬에 빈번히 드나들던 중국인들이 불렀다는 거마도(巨磨島) 등이 있다. 오늘날 부르고 있는 거문도라는 섬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온다.

구한말 청의 북양대신 이홍장 휘하에서 북양수사제독을 지내던 정여창이란 이가 있었다. 그때「거문도 사건」이 일어나자 정여창은 사건의 내용을 조사하러 거문도에 도착했다. 주민 중에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필담으로 뜻을 주고받는데 정여창이 '菊花發'의 세 글자를 내밀자 아는 이가 없었다. 이때 주민 하나가 이 글을 귤은(橘隱) 김유에게 보이자 그는 곶감 한 상자를 중국 배에 보내도록 하였다.

정여창이 놀라 '이런 작은 섬에 거유(巨儒)가 있는 것을 미처 몰랐다'며 섬의 이름을 거마도라고 부르기보다는 큰 학자가 있는 곳이라는 뜻의 巨文島로 바꿔 부르자고 주장하였다. 그때부터 조정에서 거문도로 하였다는 말이 전한다. 귤은은 본래 거문도 사람으로 1814년 유촌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전남 장성에 나아가 조선조 6대 성리학자로 손꼽던 노사(蘆沙) 기정진에게서 학문을 익힌 뒤 고향에 돌아와 선배인 만해(晩海) 김양록과 함께 낙영제를 중심으로 영재교육에 힘쓰니 멀리 영암, 장성, 완도 등지에서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던 제자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한때 거문도는 북학의 발생지인 양 대성황을 이루었다.


시련의 역사-거문도사건
거문도는 19세기 말기에 동양의 약소국을 서로 제 나라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던 강대국이 저마다 한반도에 눈독을 들여 일으켰던 거문도사건으로 더욱더 잘 알려졌다. 이 사건은 구한말 우리의 국력이 얼마나 미약하였으며 반대로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淸日露英 열강의 음모가 얼마나 음흉하였던가를 잘 입증해 주는 역사의 장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말기에 민씨 정권과 러시아 사이에 한-러 밀약설, 곧 러시아의 힘을 빌어 청나라와 일본의 세력을 견제하고 왕실을 보호하려던 비밀교섭이 오가자,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1885년 3월 1일에 느닷없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이에 앞서, 19세기 전반을 통해 해양으로 진출하려던 러시아는 세계 도처에서 영국과 대립하였다. 조선 내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을 무렵인 1885년 3월 영국이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전투를 개시하자 조선에서도 양국의 충돌위기가 예상되었다. 이때 러시아의 영흥만 점령 계획설이 나돌면서, 영국은 러시아에 대한 공격책으로 거문도 점령 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 천연의 요항인 거문도는 대한해협의 문호로서 한일양국의 해상통로는 물론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지의 요충지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었다.

1885년 2월 29일 영국 동양함대사령관 도웰 제독은 군함 3척을 거느리고 일본 나가사키항을 출발, 다음날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다. 영국군은 영국 기를 게양하고 섬 안에 포대를 구축하고, 병영을 건설하였으며 항의 안에는 수뢰까지 부설했다. 거문도 주둔군의 숫자는 200∼300명에서 700∼800명으로 증가하였고, 군함의 숫자도 5∼6척에서 10척까지 증가했다.

점령 1개월 후, 영국 측이 조선에 통고한 공식적인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변을 막고자 잠시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구실에 불과하였고, 오히려 러시아의 해군기지 블라디보스톡 항을 공격하기 위한 공격 책이었다. 조선 정부에서는 엄세영과 함께 당시 외무고문이던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특사로 파견하여 거문도에 가서 항의케 하였지만 영국 측은「석탄저장소」로 임시 사용할 뿐이라고 궁색한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그러던 중 아프가니스탄 문제가 해결되자 영국은 거문도 점령의 명분이 없어졌다. 2년 후 영국군은 러시아로부터 '한반도의 어느 곳도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1887년 2월 5일에 물러갔다. 거문도 뒤편 산령의 나무십자가 옆에는 작은 묘비 하나가 있는데 이 당시에 죽은 영국수병의 묘이다. 기록에 의하면 철수당시 영국군 묘지는 7∼9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2기만이 확인될 뿐이다.

이 사건을 두고 이 나라 역사학자들은 말할 필요가 없고 이곳 사람들조차 '말이 러시아 저지책이지 실제로는 저희들이 침략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로 이곳은 조국이 제국주의 일본에 강점되기 13년 전에 이미 영국의 '식민지' 노릇을 했던 셈이다. 러일전쟁 때는 일본군이 다시 거문도를 강제 점령하여 서도에 진지를 구축하고 해저전선을 설치하는 등 거문도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시달려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울릉도를 오가던 생활력
거문도와 울릉도 사이의 이야기를 모르는 주민은 별로 없다. 마을마다 지금도 울릉도 절구통이 많고 울릉도 목재로 지은 옛집들이 숱하다. 배편도 시원찮던 옛날에 멀리도 떨어진 이 두 섬간의 왕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궁금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곳 세력가인 김해 김씨 족보에는 영조 47년인 1770년 주민 김씨가 울릉도를 다녀오던 도중 풍랑을 만나 죽었다는 기록이 있어 꽤 오래 전부터 동해 울릉도까지 내왕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기록으로는 갈대로 돛을 짜서 달고 대나무로 못을 박아 배를 만들었으며 선실에는 온돌까지 놓았다고 밝혀져 있다. 이들은 울릉도에서 미역, 가재목 등을 실어왔고 남는 것은 멀리 충청도 강경, 옥천까지 배로 운반하여 내다 팔았다. 철종 때인 1849년부터는 정기선이 운항했는가 하면 5∼6척씩 선단을 지어 내왕하였다.

이렇게 울릉도를 오가며 부른 노래가 유명한 거문도「술비야 노래」다. 이는 일의 능률을 높이고 노동의 고달픔을 잊고자 부르는 노래다. 세 사람이 틀에서 얼래를 돌리고 여러 사람이 칡덩굴과 새끼를 연결시켜 길게 만들면서 부르는 '에이야 술비야' 등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전남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거문도뱃노래」는 거문도에서 어부들이 부르는 노동요이다. 주된 것이 노래이고 동작이 가미되어 있으며, 고사소리, 술비소리, 놋소리, 월래소리, 가래소리, 썰소리가 있다.


그 유명한 백도도 거문도를 거쳐야
거문도는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3대 어업전진기지 가운데 하나일 만큼 부근 해역은 황금어장이었다. 삼치, 도미 등 고급어종이 주류를 이루어 외화획득에도 큰 몫을 담당하였고, 파시 무렵에는 항구에 꽉 찬 어선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그러나 한일어업협정 이후 섬 10마일 남쪽으로 어로 제지선이 지나는 바람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농경지라야 밭뿐인 거문도로서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개발하는데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

서도의 남단과 북단에 등대가 있는데 그중 남단의 거문도등대는 1904년에 설치된 동양최대의 등대로 매 15초마다 한 번씩 비추는 촉광은 약 40㎞에 이른다. 거문도 관광명소로서 첫 손을 뽑는 이곳은 주위의 잔디와 수월산 기암절벽에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등대 가는 길목 동백터널은 또 다른 남국의 정취를 자아낸다.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70리쯤 떨어진 곳에 백도가 있다. 태고의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빼어난 경관으로 1979년에 명승지 7호로 지정되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이곳에 가려면 반드시 거문도를 거쳐야 한다.

끝없이 푸르기만 한 바다 가운데에 불쑥 솟은 바위섬 36개(혹은 39개)가 모인 백도는 문명에 젖은 도시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로운 원시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철을 가리지 않고 휘감는 파도와 바람에 씻기 우면서 저마다 독특한 형태를 지니게 된 바위섬, 메마르고 단단한 바위땅에 뿌리를 내리고 철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갖가지 풀과 나무, 캄캄한 밤에 뱃길을 잃었던 거문도 어부에게 그 향기로써 길을 알려준 풍란과 석란, 그 원시 자연의 품안에서 저 홀로 주인인 양 마음껏 날며 지저귀는 철새의 무리가 있는 곳이 백도다.


거문도 8경
귤은 선생의 사당 숲 사이로 가을 달빛이 비치는 정각의 모습을 말하는 귤정추월(橘亭秋月),
대나무가 많은 죽촌 마을에 밤비가 내리면 대나무 잎새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죽림야우(竹林夜雨), 거문도를 막 들어서는 서도 북쪽 30∼40m의 벼랑 아래 바람이 일면 2∼5m의 물기둥이 솟아 오색 물보라를 날리는 녹문노조(鹿門怒潮), 서도 등너머 농냉이에는 넓은 바위가 있고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담은 둘레 80m, 깊이 6m의 연못이 바위 한가운데에 있는데 이곳에서 서산 마루를 넘는 해를 보면 하루를 잊는다는 용산낙조(龍山落照)가 있다.

또한 병풍처럼 펼쳐있는 무인절경의 백도에서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하얀 돛단배가 햇살에 비칠 때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백도귀범(白島歸帆), 거문도 등대로 가는 길에 선산바위가 있고 산정에서 약 80평의 마당 같은 바위가 있는데 안개가 자욱히 끼는 날이면 기와지붕 같은 형태의 윤곽이 뚜렷이 나타나 풍경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석름귀운(石凜歸雲), 거문도의 유일한 모래밭 뱃골, 하얀 모래가 널리 깔려있는 이곳에 여름이 오면 수정처럼 맑은 바다와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는 이곡명사(梨谷明沙), 촉광이 높은 불빛을 이용하여 칼치잡이와 멸치잡이를 하는 수십 수백 척의 어선들이 바다에 몰려 있을 때면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온 바다가 불야성을 이루는 홍국어화(紅國漁火) 등이다.


동도
동도는 전라좌수영에 딸린 거문도의 한 섬으로서 거문도 동쪽이므로 동도라 했다. 해안은 암석해안이 많고 남동해안과 남쪽 해안은 높은 해식애가 발달했다. 서도와 고도로 둘러싸인 내해는 잔잔하고 수심이 깊어 천연의 양항이다.

360여 년 전 충주 추씨, 경주 김씨, 밀양 박씨들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별장 1인과 농로군(노를 젓는 수군) 460여 명을 이곳에 두어 방비케 했다. 조선시대에는 흥양현(현 고흥군)에 속하다가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돌산군 삼산면에 편입되고, 1914년 여수군에 속하다가 1949년 여천군에 편입되었다.

출신 인물로 근세 유학자로 활약한 교은 김유(1814-1884)가 있다. 그는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서양세력이 조선 근해에 자주 출몰할 무렵인 1854년 4월에 러시아의 푸자친(Putiatin)제독이 이끄는 '러시아 함대의 거문도 기항사건'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리고 이후의 사건들을 '해상기문'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청나라 수군제독 정여창이 거문도에 왔을 때 그의 제자들과 필담한 후 이 섬의 학문에 놀라 삼도를 거문도라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를 추모하는 귤은제를 지낸다.

1885년 영국군이 거문도 점령시 포대를 만들었으며 그 흔적인 굴이 현재도 남아 있다. 특산물로는 돌미역이 나며 주요 수산물로는 삼치, 전복, 갈치, 고등어, 전갱이, 멸치, 도미, 조기, 굴 등이 있다.


서도
다도해 남단부에 있으며 동도, 거문도와 함께 삼도라 불리는 섬이다. 섬 이름은 거문도 내의 3개 도서 중 서쪽의 섬이라 하여 서도라 하였다고 한다. 입도 시기는 약 360여 년 전으로 추씨가 들어와 변촌리에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1396년 흥양현(현 고흥군) 속하였고, 1701년에 통영(현 충무)으로 군정을 이관하여 별장을 두다가 철종 6년 흥양현으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1881년 삼도를 거문도라 칭하고 진을 설치하였다. 1896년 거문진을 폐하고 초도 손죽도를 상도, 거문도를 하도라 하여 돌산군에 이속하면서 서도에서 서문도의 행정을 수행하였다. 1910년 상.하도를 합해 삼산면이라 하였다. 1908년 일본인들이 강제로 서도리의 행정기구를 거문리로 옮겨가 지금도 면사무소가 거문리에 있다. 1914년 여수군, 1949년 여천군에 속하였고 지금은 여수시가 관할하고 있다.

현재 서도리에 거문도 뱃노래 보존회가 있으며 거문도 뱃노래가 전해진다. 어민들이 출어하거나 만선이 되어 돌아올 때 흥겹게 부르는 노래로 400여 년 전부터 구전되어 왔다. 이 노래는 목아비가 선창하면 젓군들이 뒷소리를 받는다. 고기 잡으러 떠날 때 고사 지내는 '고사소리',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놋소리', 그물을 당기면서 부르는 '월레소리', 고기를 배에 실으면서 부르는 '가래소리', 만선되어 돌아오면서 부른 '썰소리' 등 5가지로 구별된다. 주요 수산물은 멸치, 삼치, 갈치 등이며 농산물로는 마늘이 있다.

교회는 거문도에 1개, 동도에 2개, 서도에 3개가 있다.
-한국섬선교회 ▼

거문도

교회이름주소전화교단
거문교회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061)665-8151예장통합


동도

교회이름주소전화교단
유촌교회전남 여수시 삼산면 동도리061)665-7418예장통합
죽촌교회전남 여수시 삼산면 동도리061)666-1583예장통합


서도

교회이름주소전화교단
덕촌교회전남 여수시 삼산면 덕촌리061)665-8315예장통합
변촌교회전남 여수시 삼산면 변촌리061)665-5941예장통합
서도교회전남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061)665-8336예장통합




(위성 사진-거문도)


(위성 사진-서도)


(위성 사진-동도)


1) 서도에서 바라본 거문도다리(1993년)


2) 아침을 맞는 거문도다리(1993년)


3) 거문도등대1(1993년)


4) 거문도등대2(1993년)


5) 해안1(1993년)


6) 해안2(1993년)


7) 거문도 일출1(1993년)


8) 거문도 일출2(1993년)


9) 거문도 일출3(1993년)


10) 영국군 수병 묘(1993년)


11) 백도1(1993년)


12) 백도2(1993년)


13) 백도3(1993년)


14) 백도4(1993년)


15) 백도5(1993년)


16) 백도6(1993년)


17) 백도7(1993년)


18) 백도8(1993년)


19) 백도9(1993년)


20) 백도10(1993년)



  추선자
이 코멘트에 대하여...   10-07-13 16:16 
우연히 컴에서 고향을 보고 거문도를 더  알게 되고  생각하고 있던거 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움을 느껴 봅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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