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위치 전남 신안군 흑산면 소흑산도 동경 125° 07″/ 북위 34° 04″ 방위 흑산도항(면소재지) 서쪽 43마일
	내가 어릴 적, 고기잡이하던 중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다 돌아온 마을 어른들의 말을 들으니, 배가 파도 따라 흘러가다가 멀리서 중공(지금의 중국)배를 보았으며, 그것으로 봐 거의 중공까지 갔을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는 섬(낙월도)이 가장 서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질 녘에 보면 한 점 거칠 것 없이 해는 그대로 바다로 들어간다. 그래서 섬이름도 달이 진다는 낙월도(落月島)이다. 물론 커가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실제로 경험하기는 '대한민국 최서남단' 가거도 가는 뱃속에서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가거도는 하루에 다 못 갔다. 육지에서 서쪽 방향으로 뱃길 2시간인 내 고향과는 비교가 안 된다. 어찌어찌 해서 흑산도까지 가서 한 밤 자고 다음 날 새벽에 여객선 '새마을호'를 탄다. 그리고 내리 6-7시간을 간다. 중간에 '태도군도'에 몇 사람 내리고 또 간다. 그때 만난 파도를 지금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껍다. 물론 갈 때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십중팔구는 그랬다. 그렇게 해서 간 섬이 '가거도'다. 일본 강점기 때 자기들 맘대로 소흑산도라고 붙인 행정명칭이 지금까지 남아 있지만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가거도는 '가히 거할 만한 섬'의 준말이다. 이 곳에서 멀지 않은 홍도의 빼어난 경관을 여성으로 간주한다면 가거도의 해안 절경은 그 웅장함 때문에 남성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가히 거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육지에서 멀기고 하고 또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부르면서 위안을 삼고 살았을 법하다는 말도 있다. 가거도는 3개의 마을이 있다. 그 중 2구 대풍마을은 몇 사람 살지 않는다. 본 마을과는 산세가 험해 걸어갈 수 없어 번번이 지나쳤지만 1997년도에는 큰 맘 먹고 갔다. 선착장이 없어 해안 암석에 겨우 배를 대고 위쪽에 자리잡은 마을을 쳐다보면서 깜짝 놀랐다. 십자가가 보였다. 교회도 없는데 무슨 일일까? 십자가는 김미금 할머니(86세)의 집마당 앞 돌담에 세워져 있었다. 하얀 나무 십자가를 담 위에 시멘트로 잘 붙여 놓았다. 사연은 간단했다. 본 마을로 교회 출석하기가 힘들어 돌담에 십자가를 세우고, 방 하나를 잘 정돈하여 혼자 기도하며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다. 작은 강대상도 있었다. 5년 전인 1992년도에는 2구 항리마을에 학교 선생님과 어린이들이 교실에서 예배드리는 현장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며 감동을 주더니만 이번에는 3구 마을에서다. 교회도 없는 외딴 섬,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 뿐으로 21세기의 로빈슨 크루소의 후예들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신앙은 이렇게 크고 아름다웠다. '가히 거할 만한' 또 다른 연유를 삼아도 되겠다. 작년 2008년도에 갔을 때도 그 돌담 위의 십자가는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할머니 골깊은 얼굴. 노인들에게 10년의 세월이 얼마나 무겁고 깊은 것인가를 10년 전에 찍었던 사진은 말해주었다. - 최종민(한국섬선교회 ▼)
■ 상영시간 : 4분 08초 ■ 촬영지 : 가거도(전남 신안군 흑산면, 2008년) ■ 배경음악      • 곡명 : 주는 나의 소망      • 노래 : 중앙대 마스터 코럴      • 음반 : 8인의 성악가 명성가2(삼성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