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래에 들어서 섬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 설령 눈발이 비치는가 싶다가도 바로 녹아버린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다. 물론 울릉도나 독도 등은 예외지만. 눈이 많던 60-70년대 섬의 정경을 소중한 추억처럼 간직하고 있는 나는 삭막한 겨울에 섬을 다닐 때마다 한 가지 소망을 품게 되었다. '옛날과 같은 눈을 경험할 수 없을까'이었다. 폭설 때문에 고생이 심한 분들께는 야단맞을 소리겠지만 섬선교하면서 생긴 소박한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질 줄이야. 2001년 1월 13일, 모레부터 목포, 신안 지방에 많은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홍도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할 일도 있고 해서 바로 출발했다. 하루가 더 걸려 홍도에 도착하니 평소에 그렇게 많던 관광객들은 모두 나가버리고 조용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일부터는 폭풍주의보로 여객선 운항이 전면 중단된다고 했으니 말이다. 남들은 피난 떠나듯 서둘러 섬을 빠져나가는데 나는 거꾸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튿날, 눈을 뜨니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해가 뜨면 바로 녹아버릴 것 같아 서둘러 홍도남부교회 장세창 목사님과 함께 섬에서 제일 높은 깃대봉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눈 덮인 산에서 내려다보는 섬과 바다는 어제 보았던 풍경이 아니었다.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에 놀란 우리는 찬양 한 곡을 아주 멋지게 불렀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눈은 닷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내가 잘 아는 50대의 한 홍도 토박이 남자는 말하길 이런 눈은 생전 처음이라고 하였으니 그때의 눈을 짐작케 하였다. 첫 날 산에서 내려오다가 장목사님은 발목이 삐끗하는 바람에 걸을 수 없어 그 후 나 혼자 다녀야만 했다. 뒤편 해수욕장으로 갔다 앞쪽 발전소 가는 산길을 갔다, 뒷산 양산봉에 올랐다 농협 밑 해변으로 내려갔다, 맨 몸도 아니고 한 손은 4kg가 넘는 카메라, 또 한쪽 어깨에는 무거운 삼각대, 등에는 배낭을 짊어졌으니 노동도 그런 중노동이 없었다. 하얀 눈꽃 송이가 '펄펄' 내리는 것도 아니고, 심한 바람과 함께 내리는 눈보라는 앞을 분간키도 어렵고 몸도 가누기 힘들다. 이런 눈을 섬사람들은 '품피'라고 한다.
주일 낮 예배가 끝나자 한 중년 남자가 말을 건넸다. 폭풍으로 잠시 피항한 예인선 선장인데 바다로 나가고 싶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꿈속에 산다고 하지만 바다로 나가야 할 때와 말아야 할 때를 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다. 홍도의 담력 좋은 선장들도 아예 밖을 쳐다볼 생각을 안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예인선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심한 풍랑에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배가 예인선이다. 그렇게 해서 '눈오는 홍도' 사진까지 건질 수 있었다. 나는 이때의 일지제목을 '꿈같은 5일'이라고 하였다.
오늘은 새해 첫날, 모두의 선한 꿈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그리고 가정과 교회, 일터 위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 넘치며, 우리 홈페이지와 '항해일지'가 많은 분들의 사랑 속에서 커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 최종민(한국섬선교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