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위치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 동경 126° 30″/ 북위 35° 50″ 방위 군산항 남서쪽 31마일
	서해안 섬에서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마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안 길로 한참 걸어가는 경우가 많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해 섬에서 제일 깊숙한 바다 끝자락에 선창을 쌓아 두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길이라고 하지만 실은 자갈밭에 큰돌 몇 개 던져 놓았던 것이고, 그래서 밀물 때 이 길을 지나가려면 밀려오는 바닷물과 한참 실랑이를 벌여야 했었다. 지금은 아무리 작은 섬이라 해도 높게 방파제를 쌓고 시멘트 포장을 했다. 섬에서는 이 길을 '고속도로'라고 한다. 밤에는 시원한 갯바람 맞으며 별자리 세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요, 처녀 총각 데이트 장소로 이 만한 데가 없다. 선창에서 마을로 통하는 이 해안도로 옆은 썰물 때는 온통 뻘 밭이다. 그곳에는 온갖 생물들이 울타리 없는 제 집 속을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다. 바지락이니 굴이니 해서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을 찾는 여인네들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9년 전 선유도를 찾던 날도 이와 같았다. 전에는 한 두 사람이 갯가에 나와 길옆 바위에 있는 굴을 조새(나무 망치에 끝이 뾰쪽한 쇠꼬챙이를 끼움)로 조금씩 거둬 주전자 하나 채우는 정도였는데 이 날은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바다 곳곳에 돌무더기가 있었고 이것이 마을 공동 굴 밭이었던 모양인데 오늘 이것을 일제히 수확하는 날이었다. 굴을 거둬들이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손가락 끝을 파고드는 살얼음 추위를 축축한 면장갑 하나가 어떻게 다 막아줄 것이며, 발목까지 빠져드는 뻘 밭에서 구부정하게 앉아 있다보면 나중에는 허리가 잘 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추위를 막으려고 머리도 감싸고 두꺼운 옷도 입는다. 처음에는 조새로 현장에서 굴을 까내다가 나중에는 아예 까지 않은 굴 덩어리를 그물망에 담아 뭍으로 실어 나른다. 육지에서 작업할 셈이다. 말이 좋아 머드팩이지 얼굴은 온통 새까만 뻘 자국이다. 날카로운 굴 껍데기는 면장갑을 구멍낸 지 오래된 듯 싶다. 귀까지 덮는 두꺼운 모자라도 쓰고 나오시지 수건하나 덜렁 걸치고 나온 어머니, 뻘 묻은 손 때문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지도 못한다. 육지 나간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면서 추위를 견뎌내는 섬어머니들의 마음이 뻘 밭 가득한 석양이었다. - 최종민(한국섬선교회 ▼)
■ 상영시간 : 3분 59초 ■ 촬영지 : 선유도(전북 군산시 옥도면, 1999년) ■ 배경음악      • 곡명 : 거기 너 있었는가      • 노래 : 로저와그너합창단      • 음반 : Home Sweet Home(E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