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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거차도] 90cm에 8만원, 목숨 걸고 따는 맹골수도의 보물 '돌미역'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22-08-09 05:07     조회 : 1778    

지난달 28일 전남 진도군 서거차도 주민이 돌미역을 따기 위해 요동치는 어선에 몸을 기댄 채 낫을 뻗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갯바위 미역 채취작업. 프리랜서 장정필


미역을 말리는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90cm에 8만원, 목숨 걸고 따는 맹골수도의 보물 '돌미역'



지난달 28일 오후 4시쯤 전남 진도군 서거차도. 요동치는 어선에 엎드린 어민들이 미역 채취용 낫을 연신 휘저었다. 절벽을 향해 머리를 뻗은 작업자의 손이 지날 때마다 아이 키만 한 미역이 한 움큼씩 딸려왔다. 거센 파도로 유명한 맹골수도(孟骨水道) 갯바위에서 자란 돌미역을 따내는 작업이다. 이들이 배를 댄 일대는 자연산 돌미역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진도곽(藿) 주산지다.

돌미역 채취는 비싼 몸값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작업 내내 1.2t급 어선에 몸을 맡긴 채 험난한 파도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 작업자가 갯바위 코앞까지 머리를 내밀고 미역을 따는 작업은 곡예처럼 위험해 보였다. 파도에 밀려 배가 바위로 밀릴 때마다 머리를 찧지 않으려 몸부림을 쳤다. 좁디좁은 어선 안에선 “머리”, “머리” 하는 고함이 연신 터져 나왔다.

국내 해조류(海藻類) 중 간판격인 미역은 수퍼푸드로 주목받는 식재료다. 예로부터 피를 맑게 하고 기운을 북돋워 주는 상징적 음식으로 꼽혔다. 과거 미역을 바닷속 잡초처럼 여겼던 유럽인조차 한국미역 수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추세다.

미역 중에서도 자연이 키워낸 돌미역은 맛과 영양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8월 현재 서거차도산 마른 돌미역은 길이 90㎝ 한장당 6~8만 원에 판매돼 양식미역(1만 원)보다 6배 이상 가격이 높다. 이곳에서 나는 돌미역은 잎이 가늘며 길고 곧게 뻗은 게 특징이다. 청정해역에서 자생해 영양이 풍부한 데다 끓이면 사골 같은 뽀얀 국물이 나온다.

진도곽은 상품성이 좋은 만큼이나 채취 때 위험성이 높다. 이른바 ‘배작업’을 하다가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머리나 얼굴을 바위에 부딪쳐 크게 다치게 된다. 고개를 숙인 채 미역을 따거나 갯바위 쪽으로 이동하다가 바다에 빠져 급류에 휩싸여 숨지는 경우도 있다. 사고가 없더라도 2~3시간 동안 배 바닥에 엎드려 작업하다 보면 가슴과 배 쪽에 피멍이 들기 일쑤다.

그런데도 어민들은 작은 어선을 타고 갯바위 미역을 따는 ‘배 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한다. 물살이 세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곳에서 나는 최상품 돌미역을 얻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어서다. 과거부터 “목숨을 거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채취가 중단된 적은 없다. 어민들은 이날도 험난한 파도·바위와 싸운 끝에 500㎏가량의 돌미역을 따냈다. 박해용(57) 서거차도 이장은 “1년 중 물이 가장 낮아지는 7월 한 달간만 작업이 가능해 위험을 무릅쓰고 미역을 딴다”고 말했다.

‘배작업’의 긴장감은 주민들이 함께 따낸 미역을 나눌 때까지 이어졌다. 미역 작업을 마친 오후 7시쯤 서거차도항에는 철제 저울이 놓였다. 서거차도의 ‘공동작업·균등분배’ 원칙에 따라 이날 주민 12명이 따낸 미역을 나누기 위해서다.

저울로 잰 미역더미 12개가 바닥에 놓이자 박 이장의 부인 배희숙(57)씨가 나섰다. 그는 손에 쥔 화투패를 바라보며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작위 미역 분배를 위한 추첨용 화투패 뒤편에는 작업에 참여한 주민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날 채취한 물미역은 건조틀에서 2~3일 동안 햇볕에 말린 다음 건미역으로 판매된다.

예부터 미역은 출산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나라 『초학기(初學記)』에는 ‘고래가 새끼를 낳은 후 미역을 뜯어 먹은 뒤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였다’는 취지의 기록이 나온다. 민간에서는 이를 ‘산후선약(産後仙藥)’이라 하며 출산 후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였다.

미역은 혈당조절과 고혈압 예방, 콜레스테롤 제거에 효과가 있다. 식이섬유와 요오드·철분·칼륨·칼슘 등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이 중 요오드는 신진대사를 증진하는 효과가 있다. 출산 후 왕성해진 신진대사와 부족해진 혈액의 생성을 촉진하는 데 미역이 큰 역할을 한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1·2월에 뿌리가 나고 6·7월에 따서 말리며, 임산부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기록돼 있다.

미역 작업 후 서거차도 주민 정해석(55)씨에게 돌미역 요리를 요청해봤다. 그는 1993년부터 뭍에서 가수 활동을 하다 노모를 모시기 위해 2002년 5월 고향에 돌아왔다. 섬 안팎에선 ‘미역요리의 달인’으로 통한다는 그는 큰 솥에 마른 돌미역을 듬뿍 넣고 2시간을 넘게 끓였다. “돌미역은 재탕·삼탕을 거듭할수록 맛이 진해지는 만큼 물도 양식미역보다 많이 넣는 게 요령”이라고 했다.

미역 초무침은 쫄깃함이 일품인 돌미역의 식감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요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날 따낸 돌미역을 흐르는 물에 빨래하듯 수차례 씻어냈다. 돌미역은 표면의 점액질 성분이 풍부해 건강에는 좋으나 식감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그는 “말리지 않은 돌미역으로 초무침이나 냉국 등을 할 때 비법”이라며 “어린 돌미역은 미역을 따낸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최상의 맛”이라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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