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호 편지(383)ㅣ정광섭 목사 추모 특집(1)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인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흑일도교회 정광섭 목사의 아내 최경숙입니다. 오늘 제가 남편 대신 편지를 드리게 됨은 긴한 사정이 생겼기 때문인데 그것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간 것입니다. 지난 1월 31일 오후 3시경,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몸이 아프다고 하며 육지 병원에 가기 위하여 배에 올랐으나 곧 바로 의식 불명이 되었으며 15분 거리의 육지 포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사인은 심근경색이라고 하였습니다. 노회 주관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남편의 시신은 화장하여 평소 선교선이 항해하던 바다에 뿌렸습니다. 저희가 흑일도에 온 것은 지금부터 27년 전인 1989년 10월이었습니다. 일전에 전도여행 왔던 흑일도를 재차 방문하였는데 그때는 교회가 갓 개척되었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교역자는 떠난 상태였으며 어른 몇 명 앉을만한 좁디좁은 예배당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섬 이장은 처음 전도하였던 우리더러 교회를 책임지라며 농담처럼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결국 편안한 육지 목회를 접고 섬으로 왔습니다. 어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그들의 손짓을 도무지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섬에 오자마자 1톤 정도의 작은 통통배를 구입하여 이웃 교회 없는 섬을 순회하며 전도하는 일을 겸했습니다. 동화도, 서화도, 어룡도, 마삭도, 후장구도 등 5개 섬을 주일이 아닌 평일에 날씨와 기름값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방문하여 전도와 예배드리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5년 뒤, 한국섬선교회에 소속되어 사역은 계속되었습니다. 마삭도에는 예배당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섬사역 27년은 오롯이 바다 항해길이었습니다. 날씨 궂은 날은 아예 항해를 포기합니다. 하지만 잔잔한 파도가 갑자기 사나워지는 것이 바다에서는 예사로운 일입니다. 날선 칼처럼 파도가 일렁이며, 배가 옆으로 기우뚱하면서 물높이가 어느새 머리 위에 있을 때는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나 저나 얼굴이 노랗게 됩니다. 파도를 가르면서 내는 배 밑창 갈라지는 소리는 왜 그렇게 요란한지요. 몸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온통 뒤집어 놓을 때 오직 저희들은 ‘주님 ’만 외칠 뿐이었습니다.
	(위에서 부터) 가족들(아들 직, 딸 사라와 안나), 전도 결실인 마삭도 성도들, 선교선 방주11호		남편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을 보면서 어찌 보면 남편은 소원대로 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그렇게도 바다 항해를 기쁜 마음을 가지며 보람으로 여겼는데 세상 떠나는 그날도, 선교선 운전 의자에 앉아 시동을 걸자마자 바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시신을 육지에 안장하려고 계획하였으나 남편의 지난 생을 잘 알고 계시는 노회 목사님들이 바다에 거두자고 하신 제안을 받아들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 또한 남편이 바라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떡합니까?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아무 말도 전할 수 없었습니다. 장차 하늘나라에서 만날 그날이 있음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평생을 함께 살아온, 그것도 생과 사를 넘나들며 단 한 번의 바닷길도 혼자가 아닌 둘이 달려왔기에 남편의 빈자리가 너무 큽니다. 노회 임원 목사님들이 흑일도교회를 맡을 의향이 없는지 제게 여쭈었습니다. 교회 목회는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선교선 사역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또 한 번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는 운항중이거나 정박 중일 때 할 일이 많습니다. 입항할 때 미리 선착장에 뛰어내려 뱃줄을 묶는 일이며, 장시간 운전 중일 때는 교대로 운전대를 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편은 저에게 수시로 운전대를 넘겼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부선장’이라고 부릅니다. 아마 이 일대에서 여자로서는 제가 운전을 제일 오래 했고 또 잘 할 것입니다. 남편은 이 때를 벌써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 하나님께서 짜신 각본에 이런 대목이 이미 들어있다고 봐야할까요? 이런 상황을 되새기면서 저는 흑일도를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 교회를 섬기며 이웃 무교회 섬 순회 전도와 예배드리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노회에 알렸습니다. 예전에 전도사일을 하기도 했지만 노회에서 추천하면 신학교에서 다시 공부도 할 것입니다. 제 부족한 능력과 환갑을 넘긴 나이를 겸손의 채찍으로 여기며, 힘이 허락하는 대로 열심히 주의 일을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최경숙(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