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호 편지(384)ㅣ정광섭 목사 추모 특집(2)
			앞서간 정광섭 목사를 추모하며 -문경두(방주8호 운항책임자, 월전교회 목사) 남편의 영정 사진 앞에서 그의 아내가 서럽게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낯설고 물설은 작은 섬에 들어온 이유가 오로지 남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뒷 모습은 작고 초라하였습니다. 불규칙하게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가 유난히도 좁아 보였습니다. 지난 세월을 오롯이 함께해 온 남편의 빈자리만큼이나 말입니다. 어디 아픈 데라고는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이른바 돌연사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내리눌린 듯 답답하며 숨쉬기가 힘들다 하였습니다. 급한 대로 손가락 끝을 따서 피를 빼니까 혈색이 돌고 괜찮았답니다. 그 날따라 눈이 많이 온 데다 내리 며칠 동안 바다 사정도 좋지 않았습니다. 주일은 지내고 월요일에나 병원에 가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주일 오후에 그만 변을 당한 것입니다. 그녀 앞에서 할말을 잊었습니다. 섬만 아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기에 더욱 서러웠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따져 보아야 할 지난 세월의 사연이 참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처소가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삶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평생을 생계에 시달리며, 세 자녀를 육지 한데로 내몰고, 사회적으로도 외로왔던 지난한 삶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을 이끌고 생면부지의 섬 주민 속으로 들어올 때에는 남다른 무엇이 있었습니다. 신앙 때문이고, 삶의 가치관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명예도, 돈도, 그 어떠한 것도 보장이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목적이고 목표일 뿐이었습니다. 부모의 선택에 세 자녀가 치러야 할 대가는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섬에는 초등학교 분교 외에는 학교가 없습니다. 성장은 곧 이별을 뜻하였습니다.
			아직은 부모 품이 그리운 그 어린 나이에 세 아이는 자기들끼리 밥해 먹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방을 구할 돈이 없어 기도원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동트기 전에 서둘러 일어나 먼 길을 걸어 학교에 가는 세 아이를 애써 외면해야 했던 아비 마음이 한시도 편했을 리 없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삶과 그 가치를 꿋꿋이 지켜 온 남편이었기에 오히려 살 만하였습니다. 상실의 아픈 마음을 미처 추스리지 못한 그녀에게 마땅히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섬에 들어올 때 무슨 마음으로 그리하였는지, 그것을 잊지 말자 하였습니다. 인생이 이런 것 아니겠느냐, 하였습니다. 어차피 하나님 때문에 시작한 일이니 하나님만 바라보자 하였습니다. 폭풍 같은 나날이 지난 후, 그녀는 남편이 조금 먼저 간 것이라 생각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이 더욱 가슴을 후볐습니다. 이제 육십을 넘긴 그였기에, 세 아이가 저만치 훌쩍 큰 지금쯤이면 부부로서의 인생을 생각할 그였기에, 지금 우리 곁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그였기에 말입니다. 지금은 남편이 없다는 사실만이 우두커니 그녀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지난 날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홀로 버텨내야 합니다. 그녀 앞에서 이렇게 따로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송구스러웠습니다. 저 작은 체구가 그럴 수 있을는지 싶습니다.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기에, 그저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솟구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처럼 불편한 것이었는지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삶은 슬픈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의지하였기에 그만큼 애달프고 서러워야 합니다. 서럽기에 차라리 아름다운 것입니다. 누군가는 찬란한 슬픔이라 하였습니다. 그 말을 여기에 가져다 쓰겠습니다. 정광섭 목사는 갔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먼저 떠난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홀연히 가고 말았습니다. 그가 애써 보듬어 온 작은 섬, 흑일·동화·서화·어룡·마삭·후장구가 그의 등뒤로 남았습니다. 수많은 세월을 그와 함께해 주었던 작은 보트만이 덩그러니 선창에 묶여 있습니다. 그가 그립습니다. 배시시 웃던 그의 얼굴이 어찌할 수 없이 사무칩니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굳이 윤동주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지금 죽어가는 모든 것을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 문경두(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