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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마을이 떠들썩합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줄 알고 나가보니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야단들입니다. 멧돼지가 산에서 내려와 고구마 밭을 다 뒤지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4, 5년 전만해도 멧돼지 이야기가 나오면 다른 나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육지에서 헤엄쳐 들어온 멧돼지는 백일도와 흑일도를 옮겨 다니며 번식을 해서 산이 온통 멧돼지와 전부터 이미 있었던 흑염소로 차 버렸습니다.
염소는 마을로 내려오지 않고 산에 있는 약초 뿌리와 나뭇잎을 먹지만, 멧돼지는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먹어버리고, 또 이곳저곳에 파놓은 구덩이가 많아 마음대로 산길을 갈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가을에 거둬야 하는 고구마를 심은 지 두 달도 안돼 고구마 줄기라도 먹으려고 뜨거운 한 여름에 작업하는 아낙네들이 여기저기 눈에 뜁니다. 모두 멧돼지 때문입니다. 흑일도 섬은 평지가 아니어서 논은 없고 밭뿐으로 고추, 깨, 콩, 옥수수, 고구마 등을 재배하여 열심히 노력하면 모자람 없이 풍족합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멧돼지의 주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멧돼지를 잡으려고 올가미도 놓았지만 번식이 너무 강해 마을에서도 어찌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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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돼지 습격을 받은 고구마 밭은 마치 포크레인이 지나간 듯한 인상이 들 정도로 처참하게 파 헤쳐졌다.
▼ 고구마 밭에 이어 옥수수 밭으로 옮긴 멧돼지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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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교회 언덕과 마당에 심은 야채와 화단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지렁이를 잡아먹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대나무가 많아 죽순도 제법 나오는데 모두 멧돼지 차지가 되어 사람들의 몫은 없습니다.
예년에 없는 풍경 하나가 생겼습니다. 육지 논에서나 볼 수 있는 허수아비가 흑일도 밭에 세워졌습니다. 할아버지 옷, 아저씨 옷, 아주머니 옷 등 가지각색의 허수아비가 태극기 모양으로 바닷바람에 휘날립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경운기를 밤마다 날이 새도록 시동을 걸어놓고 9시부터 12시까지는 남편이, 12시부터 새벽까지는 아내들이 지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지만 멧돼지는 고구마를 먹고나면 영글지도 않은 옥수수 밭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저희 집사님이 새벽기도회를 잘 나오다가 안 나와 알아보니, 저녁에 멧돼지를 지키려고 모기 방지용 비옷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방심하는 잠깐사이 멧돼지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지켜주셔야 되는 일이라며 아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변 선교 구역인 마삭도, 동화도, 서화도 등지의 형편은 흑일도와 꼭 같지는 않습니다. 흑일도는 골이 99개라고 할 정도로 산지가 험하여 멧돼지 서식지로 적당합니다. 그렇지만 주변 섬들 주민들은 생활고 때문에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동화도는 작은 그물로 잡은 몇 소꾸리의 멸치를 말리기에도 버거운데 일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흑일도 교회 지붕공사가 한창입니다. 이를 위하여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최경숙(한국섬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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