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사람들에게 안개는 친숙하면서도 불편한 존재다. 특히 교통편에 지장을 주어 안개주의보가 발효되면 모든 발이 정지된다.
|
|
어느날 전화가 왔습니다. 전혀 모르는 교회였는데 선교활동에 동참하고 싶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먼저 고마운 인사부터 하였습니다.
섬교회는 무얼 하고 싶어도 일할 사람이 없어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때가 많습니다. 재정이 소요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이런 교회에서의 전화는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분들은 섬의 사정을 잘 모르니 어떤 특별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고 섬에서 필요한 것으로 준비하겠다고 하기에, 얼른 생각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을 벽들이었습니다. 섬의 벽은 회색 일색인 시멘트 색입니다. 이 벽들을 좀 바꾸면 섬이 생기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제 말을 듣던 이 분들도 동감을 하였습니다. 순회하는 다른 섬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흑일도만 해보자고 했습니다.
정해진 날짜는 금방 닦아왔습니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다가 밖을 내다보니 안개가 자욱이 끼어 그리 멀지 않은 흑일도 선착장은 물론 교회 담장도 흐릿했습니다. 지금 시각이 10시 50분이니 육지 포구(갈두항)에서 11시 30분에 출항할 배 시간까지는 40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배 출항 10분 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안개가 끼어있고 여객선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준비하게 하시고 이곳까지 오게 하신 주님이 못 들어오게는 안하실꺼에요’라며 기다려 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들이 듣고 화를 내시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여태껏 섬에서 살면서 몸에 익힌 생활이 그렇습니다.
전화는 20분마다 걸려왔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그러는데요, 이 정도면 배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면서 포기하라고 하는데 전도사님 생각은 어떠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맡기자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마음이 넉넉하여 이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섬에 사시는 분은 날씨 때문에 겪는 고통을 잘 아실 겁니다. 이럴 때는 속이 녹고 무너집니다. 하지만 이 분들에게 제 속마음을 꺼내 놓으면 어떠겠어요?
배가 출항했어야 할 3시 30분, 전화가 또 왔습니다. ‘어떨 수 없네요. 그냥 돌아가겠어요’라고 했습니다. ‘포기하겠다는 말씀을 어찌 그리 쉽게 하십니까? 오랫동안 기도하며 준비하셨는데 너무 성급하시네요’라고 말한뒤 4시 5분 배가 다음에 있으니 기다려 보자고 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배 시간 10분을 남겨두고 안개가 걷혀 4시 5분 배는 출항을 했고 이 분들은 무사히 흑일도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 분들과 저는 이렇게 만나고 감격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일반적인 일이면 미련 없이 돌아가 버렸을 것을, 참고 인내하며 기다린 것은 주님의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박 4일 동안 일하는 내내 기쁨과 감사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들어온 날 이후로는 배가 안개로 인해 못 다니다가 이 분들이 나가는 날에 안개가 걷혀 비로소 배가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또한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페인트 칠한 벽에는 안나가 와 보더니 벽화를 그리면 좋겠다고 하면서 이곳저곳에 그림을 그려놨습니다. 동네 사람들이나 처음 섬을 찾는 분들이 즐거워하니 이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안나가 누구냐고요? 제 삼남매 중 둘째 딸입니다. 미술 공부 했냐고요? 아니요. 주님이 주신 재능으로 그렸습니다. 이 다음에는 제가 순회전도 다니는 다른 섬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섬에서 사는 30여 년간 안개 때문에 겪는 고통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특히 저처럼 배를 타고서 이섬저섬을 찾아 순회 전도를 하는 처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앞을 가로막고 있어 큰 배라도 갑자기 닥친다면 꼼짝못 할 것입니다. 다만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다닐 수 있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안개 속에서 항상 지켜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
- 최경숙(한국섬선교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