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호 편지(425)ㅣ방주11호 최경숙 전도사(흑일교회)
			바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 다음으로 있어야 하고 중요한 것이 배 일 것입니다. 그 배는 바다 일을 할 때도 쓰고, 육지까지 가야만 하는 모든 대소사에 씌여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일이라 해도, 중요한 일이라 해도, 또한 소소한 일상의 작은 일이라도 배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단지 중요하다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이들의 희노애락을 담은 인생이고 배는 곧 이들의 삶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볼일이 있어서 배를 가지고 땅끝 항구에 가게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을 나누려 합니다. 늦가을 날씨에 따뜻한 햇빛과 겨울을 시작하는 추위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바닷길을 가로지르며 30여 년 세월 오가던 그 길을 평소처럼 운항하였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항구에 다다라서 배를 정박하려고 할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순서대로 닻을 먼저 내리고 서서히 자리를 잡아 들어가려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서 다시 배를 돌리고, 또 돌립니다. 배는 항상 운전보다 힘을 많이 빼는 것이 정박하는 일입니다. 배에 비하면 차의 주차가 어렵다하여도 배보다는 덜 힘든 듯 보일 정도입니다. 그렇게 배 정박하는 과정 중에 차려입은 옷이 기름이나 짠 바닷물에 버리게 될 때도 많고, 그 밖에도 예상 못한 여러 일들이 있을 때면 배를 운항한다는 것이 얼마나 녹녹치 않은 일인지 실감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늘에 있는 제 남편과 함께 운항 할 때에는 매번 손발을 맞혀가며 운항을 하면서도 정박과정에서 한 번씩은 서로 언성도 높이게 되고, 한숨을 몰아쉬며, 땀을 닦으며 운항을 마친 뒤 배에서 내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고 저의 마음대로 되질 않습니다. 정박하기 위해서는 선창에 도달하기 직전에 닻을 던져야 하는데, 정박 위치가 잘못 잡히면 그 닻을 건져서 다시 시도해야 합니다. 그 날은 다른 곳에 다시 진입해 들어가려고 하지만 닻은 움직이질 않습니다. 원래도 뻘에 빠진 닻은 쉽게 빠지지 않아 힘이 드는데, 이번에는 뻘도 아니고 철 고물과 같은 무엇인가에 걸려서 힘으로 이리 당기고, 저리 당기고, 엔진을 이용하여 배의 힘으로 돌려 빼보려고 얘를 쓰지만 닻을 잡아당길수록 배는 점점 닻쪽으로 기울어 마치 선체가 빨려갈 듯합니다. 순간순간 남편 생각이 왜 이렇게 나던지요.
	흑일도에도 그렇지만 순회하는 섬들에는 많은 배들이 있다. 모든 배들은 닻줄이 있어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천국의 항구에 닻을 내리도록 방주11호는 달린다.		얼마를 그렇게 한참 씨름하다가 땅끝 항구에 배를 대지도 못하고 흑일도 섬으로 돌아갈 수도 없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배에서 쓰는 녹슨 칼을 가져와 묶여서 오도 가도 못하게 하는 이 닻줄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꺼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줄을 묶어 표시를 해서 띄워두고는 집이 있는 흑일도로 돌아왔습니다. 닻을 버린 채로 말입니다. 아직도 저희는 그 닻을 다시 찾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에 닻은 없지만 임시로 묶어놓을 수 있는 밧줄을 의지해서 흑일도 항구에 묶어 놓았습니다. 예전에도 이렇게 닻을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생각하면 배를 순회 운항하면서 여러 일들이 있었던 게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섬 주민들처럼 어업을 하는 배가 아니지만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서 섬들을 다니는 다리가 되어주라고 하나님이 주신 이 선교선과 함께하면서 이제는 어느덧 이 배에 저희의 모든 희노애락이 실려 있습니다. 돌아서 보면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버린 그 시간들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숱한 순간들과 그런 삶과 세월이 실려 있습니다. 이 방주11호라는 배는 그렇게 세월과 함께 작년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남편과 제 인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섬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처럼 말입니다. 지금도 흑일도에는 수많은 배들이 항구에 묶여있고, 닻이 내려져 있습니다. 또한 찾아가는 다른 섬들에도 똑같이 닻을 내린 배들이 그 섬에 묶여있습니다. 다른 데로 배가 표류할 수 없도록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닻입니다. 그 닻이 섬의 항구를 떠날 수 없게 만듭니다. 흑일도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작은 섬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섬이란 이 세상에서의 삶에서 살아가도록 닻을 내린 곳입니다. 닻을 버리듯이 이 세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가는 일이 참 기적처럼 보여 집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기적 중에 기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땅에서 표류하지 않기 위해 이 땅에 닻을 내린 이들에게 하나님이 잊혀 진 듯 보이고,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의 마음으로는 낙심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새 하나님은 저에게 새 은혜와 힘을 주십니다. 저 혼자 놓고 보면 연약하고 부족한 저에게 나올 수 없는 주님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릴 힘을 주십니다. 그들의 영혼이 진정으로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 이 땅이 아닌 하늘에 닻을 내려야 하고, 이 세상이 아닌 그들을 만드시고 사랑하시고 기다리시는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께 닻을 내려서 천국의 항구에 은혜로 이르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그 기적 중에 기적 같은 일들이 이 흑일도와 제가 순회하는 어룡도, 마삭도, 동화도, 서화도에 한국의 모든 섬들에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인생의 아픔과 슬픔이 있습니다. 겉모습이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는 상실한 마음으로 외롭고 쓸쓸한 이 섬과 같은 영혼들, 하나님의 잃어버린 모든 영혼들에게 이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그 소망을 가지고 교회의 기도 골방에 들어갑니다. “오늘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내일 기쁨으로 거둘 것이다.(시편126:5~6)”// - 최경숙(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