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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일도는 며칠 전부터 태풍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배를 묶고 지붕 끝마다 모래자루를 올려놓으며 태풍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번 태풍이 엄청 크다고 하는데 어쩔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 중에도 사람들의 관심은 저에게 쏠리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태풍은 남편 목사 없이 혼자 치루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와 마주치면 으레 하는 인사가 ‘교회는 어찌하고 있습니까? 혼자서 지붕위에 모래자루 언칠 수 있겠어요? 또 배는 어쩌러구요?’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고민하면서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이때를 위함인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바닷물에 떠밀려와 교회 밑 모래 해변에 나뒹구는 한 말짜리 플라스틱 물통을 모아 둔 것이 생각났습니다. 숫자가 꽤 됩니다. 모래자루는 너무 무거워 지붕위로 들어 올릴 수 없고, 이 물통을 이용한다면 한 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통에 줄을 매달아 처마 밑에 놓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막상 하려고 하니 물통에 물을 다 채워 나르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붕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줄로 한 쪽에 물통 다섯 개씩을 묶고 난 다음,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 줄을 묶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다리를 타고 가는 도중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통 다섯 개를 지탱하면서 줄을 옮겨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돌멩이 몇 개를 임시로 사용하여 1차 시도를 하고 2차로 물통을 메 다는 방법으로 해서 해결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혼자서 지붕 위아래를 사다리를 타고 다니면서 물통줄을 묶다 보니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한숨 돌리고 있으니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오셨습니다. 방주호가 그대로 있으니 걱정이 됐나 봅니다. 지붕에 물통 달아 놓은 것을 신기하듯 보시더니 정말 힘들었겠다고 말하십니다.
지금은 바닷물이 많이 불어난 만조입니다. 방주호가 있는 이쪽에서 저쪽 끝으로 밧줄을 옮겨가면서 칭칭 감아야 하는데 지금은 할 수가 없습니다. 물이 빠지는 간조 때에 수심이 조금이라도 얇은 틈을 이용하여 작업한다면 조금 쉬울 듯 했습니다. 기상예보로는 내일 새벽에 태풍이 온다고 하니 오늘 밤에 그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밤마다 기도하러오는 외지인 청년 한 명이 있습니다. 일 때문에 낮에는 오지 못하고 밤에는 교회 와서 기도하는 신실한 청년입니다. 기도회가 끝나는 밤 10시쯤 청년과 함께 방주호가 있는 선착장에 나가보니 예상보다 물이 많이 안 빠진 상태였습니다. 시간을 다투듯 바람은 점점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내가 물속에 들어가서 줄을 옮길 터이니 청년한테는 저쪽 끝으로 가서 줄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청년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이렇게 어두운데 물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느냐며 말립니다. 그리고 자기가 들어간다고 나섭니다.
물속에 내가 들어간다, 네가 들어간다 하는 모습을 주님께서 어떻게 보셨을까요? 혹시 주님께서도 ‘그만 해라 내가 들어간다’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주님의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지혜를 주셨습니다. 방주호는 많은 배와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옆 배의 밧줄을 풀어 방주호에 묶고 저 끝에서 끌어당기고, 방주호를 밧줄로 묶어 다른 배에서 당겨 배끼리 결박하는 방식을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이면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밧줄(닻줄, 버리줄)을 세게 묶은 다음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주님이 해주세요. 태풍 지나갈 때까지요’.
태풍은 새벽 3시에 왔습니다. 묶을 만한 것은 다 묶고 치웠다고 했는데 지금 동네는 아수라장입니다. 빗소리, 바람소리, 온갖 물건들이 날아다니면서 내는 쨍그랑 소리로 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선착장에서 들리는 배와 배끼리 부딪치면서 내는 ‘삐거덕’ 거리는 소리는 작지만 더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이런 영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출애굽사건 당시 마지막 재앙이었던 장자 죽음이 있던 날, 암울한 배경음악이 들리며 죽음의 그림자가 집 앞을 지나갈 때가 지금과 같지 않을까 하는 느낌입니다. 문은 못열고 창문으로만 간간히 바다를 내다 보는 그 시간은 정말로 길고 길었습니다.
좀 조용해지는 것 같아 밖에 나가 교회 지붕과 십자가를, 마음이 떨려 빨리도 못보고 살며시 올려봤습니다. 아무 일 없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소망도 품었습니다.//
- 최경숙(한국섬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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