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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 주에 서해의 어느 섬을 다녀오면서 바라본 바다는 유리처럼 맑았다. 바람 한 점, 파도 한 점마저도 없었다. 석양 기운을 잔뜩 머금은 태양은 방금 전 섬에서 보았던 진달래 빛깔과도 비슷했다. 그러나 바닷길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바로 그 바다에서 해일이 일어나 수 십 척의 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항해 도중 위험한 고비를 몇 번 넘겼는데 그중 위험 순위로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방주11호에서 겪었다. 2000년 3월, 8세대가 사는 동화도에 다녀오면서 겪은 때가 두 번째 위험한 순간이었다. 사실, 방주호는 2톤이 채 안 되는 소형 선박이다. 승용차가 1-2톤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날씨를 잘 살피고 항해 여부를 결정한다. 또한 폭풍주의보(풍속 초속 14m이상)가 발효되면 모든 선박은 통제를 받는다. 그런데 이 날은 주의보가 발효되기 직전이었고, 동화도의 유일한 성도의 가정에 초상이 났기 때문에 꼭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방주11호 운항책임자인 정광섭 목사님(흑일도교회)은 강원도 두메산골 출신이다. 흑일도 섬과 인연이 되었던 사연을 듣자면 싱겁기조차 한다. 언젠가 전도하러 이 섬에 갔었고, 몇 년 후에 또 가보니 교회는 세워졌는데 목회자가 없었다. 동네 어귀에서 만난 이장님이 하던 말, '그때 우리더러 예수 믿으라고 해 놓고 이렇게 교회를 비워두면 어떡하느냐'는 핀잔에 대우가 좋은 육지 교회를 뒤로하고 섬에 들어왔다. 올해로 20년째이다. 정목사님은 주변의 무교회섬인 동화도, 서화도, 어룡도, 마삭도 등 네 개의 섬을 전도 구역으로 삼고 일 주일에 한 번씩 순회 전도 뱃길에 나선다. 배에는 기관장이나 갑판장 같은 선원은 없다. 모두 최경숙 사모님의 몫이다. 말이 좋아 일명 부선장이지 막노동이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가(표 날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 부자연스러운 남편을 도와 두 세 몫을 거뜬히 하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순회하는 섬마다 얼마간의 성도들이 생겨나고 마삭도에는 작은 기도처소도 세우고 해서 보람도 있다. 이것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면 잃은 것도 있다. 아이들 교육이다. 3남매가 초등학교 이후 계속 남의 집(나중에는 기도원)으로 전전하는 동안 아이들은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고 자라야만 했다. 10년 전,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상경한 사모님의 초췌한 얼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이들을 위해서 당장 섬에서 나오라고 하던데, 저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희생하는 부모가 어디 있냐는 겁니다."
지금 두 자매는 신학대학교에, 아들은 군복무 중에 있다.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흑일도교회 예배당은 내가 보았던 가장 작은 처소다. 마치 어느 시골집 큰 방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예배당에 들어가면 얼른 눕고 싶어진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것은 이따금 들르는 여행객의 소박한 감정이고, 작고 초라한 공간은 실제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옆으로 조금씩 이어가면서 방과 화장실과 부엌들을 만들어 나간 기술은 대단하지만 분명 다시 지어야할 것이다.
- 최종민(한국섬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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