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에게 운동회는 즐겁고 신나는 날이었다. 열심히 연습한 부채춤을 부모님들께 보여드리고, 100m 달리기를 하고, 손등에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도시락으로 싸 가지고 갔던 김밥은 꿀맛이었다.
오늘은 유치원에서 가을 운동회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나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기가 어렵게 되어 미리 도시락을 만들어 놓고, 남편이 아이들을 챙겨서 다녀오기로 했다. 재윤이가 다니는 광명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40여 명이 채 안되다 보니 유치원 아이들도 함께 한다.
아이들은 개학하고, 며칠 동안 뜨거운 날씨 속에서 운동회를 준비했다. 음악에 맞춰 무용도 연습하고, 대취타(임금의 거둥, 군대의 행진, 고관의 행차 때 징, 자바라, 장구, 용고 등의 타악기와 소라, 나발, 태평소 등의 관악기로 연주 하던 행진곡풍의 군악)도 연습했다.
재윤이도 친구들과 함께 '세포야 사랑해!'라는 노래에 맞추어 율동을 하기 위해 하얀 옷에 세포 모양의 스티커도 오려 붙이고 열심히 연습했다. 드디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맘껏 뽐내는 날이 된 것이다. 비록 엄마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서윤이는 형과 함께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고, 재윤이는 생전 처음 하는 운동회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아빠와 함께 통학선을 타고 갔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운동회 재밌었어?" 라고 물었더니 서윤이는 "응, 나는 흙장난 했고, 아빠는 운동(줄다리기)했는데 아빠가 이겼어" 했다.
"엄마, 아빠가 줄다리기를 했는데 이겼어. 아빠가 힘이 센 가봐."
"그리고, 엄마, 나 40m 달리기 했는데 3등 했어."
"그래? 잘했네, 근데 몇 명이 뛰었는데?"
"어? 나랑, 안민혁이랑, 김은수랑 셋이서."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있는 나를 보며 옆에 있던 남편이 "헐렁한 바지를 입고 뛰어서 그랬지? 그래도 우리 아들 넘어지지 않고 잘 달렸어!" 하고 대신 변명을 해 주었다. 재윤이는 배가 나와 바지를 조금 크게 입히는데 달리면서 입고 갔던 바지가 자꾸 흘러 내려 여러 번 치켜 올렸고, 그래서 달리기에 집중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해 본 운동회 달리기에서 재윤이는 3등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재윤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아이가 하는 일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데 재윤이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운동회 때는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흘러내리지 않는 바지를 입혀 보내야겠다.//
- 박희경(한국섬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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