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선교회 최종민 회장의 박요한 목사 매년 섬 100곳씩 20년간 헌신 해가 바뀌고 새해가 되면 박요한 목사님과 나는 국내 지도와 메모 용지를 꺼내놓고 마주 앉는다. 올해에 찾아갈 섬과 일정을 정하기 위함이다. 대략 100개 정도의 섬을 고르는데 대부분 작은 섬이요 교회가 없는 무교회 섬이다. 교계 원로인 목사님의 스케줄을 감안해 달과 날짜를 꼼꼼하게 챙기고 나면 약국으로 간다. 방문하는 섬에서 세대별로 나눠줄 상비약을 사기 위함인데 그 숫자는 미리 파악해둬야 한다. 목사님께서 조금씩 모아둔 돈은 항상 빠듯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가격이 싼 약국은 어디인지, 그것 또한 미리 알아둘 일이다. 이렇게 하기를 20여년, 내게 사정이 있어 날짜를 미리 정하지 못한 몇 번을 빼고는 한결같은 일이다. 박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이다. 87년 1월 한국섬선교회가 시작되었고 그 이듬해 겨울, 일반 목회에서 막 은퇴한 목사님을 선교회 상임고문으로 모셨다. 박 목사님은 섬 목회 경험은 없지만 부친 박도삼(1876∼1956) 장로는 우리나라 섬 선교의 선구자셨다. 100여년 전, 성서공회 권서와 교역자였던 선친은 서남해안 일대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셨다. 지금도 섬에 가면 이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본다. 박 목사님이 선친 뒤를 이어 섬선교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83년, 선친의 발자취를 따라 섬 순회를 했을 때라고 한다. 여름 한 달을 휴가내 찾아간 섬 순회는 그 다음 해에도 계속되었으며 곧 연중으로 바뀌었다. 박 목사님이 1917년생이시니 올해로 92세이다. 가끔 안과진료만 받으실 뿐 건강하다. 그러나 건강하다는 것만으로 섬선교회에 쏟는 열정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때 유리 같은 바다가 일순간 칼끝으로 변하고 곧 사선이 되기도 한다. 2003년 여름, 목사님과 나는 한반도 땅끝 갈두항에서 선교선 '방주11호'(1.5t 규모의 소형 선박)를 타고 서화도로 가고 있었다. 5세대가 사는 작은 섬이었다. 출발한 지 2, 3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 배가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이내 회오리 파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왼쪽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오른쪽으로 쏠리면서 창밖에 보이는 파도 끝은 이미 이 배의 한참 위에 있었다. 우리는 고개를 들고 성난 파도를 봐야 했다. 그 후 배 타기 전 주민등록증을 옷 속에 넣었는지 차마 묻지 못했다. 이런 일은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서남단 섬 소흑산도(가거도)는 참으로 먼 섬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매년 가장 먼저 가는 곳이 이 섬이다. 가거도를 다녀오면 일년 순회의 반절이 끝난 느낌이다. 예전에 이 곳은 하루에 못 갔다. 목포에서 흑산도로 가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새벽 여객선을 갈아탔다. 한 점 보이지 않는 바다를 5시간 동안 갔다. 파도가 높아 멀미를 하고 배 바닥에 엎드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 때가 비일비재하였다. 이런 중에 목사님을 보니 자세를 꼿꼿하게 하고 서 계셨다. 이것이 멀미를 덜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고 하셨다. 나는 잘 알았다고 하면서도 막상 일이 닥치면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본다. 멀미 퇴치 비법이 서로 달랐다. 크리스천들은 어떤 일 앞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에서 해답을 찾는다. 나는 박 목사님을 먼저 떠올린다. 그분의 말씀과 생활하는 모습은 곧 내 삶의 기준이 된 지 오래다. 박 목사님의 생활은 청빈하고 검소하다. 교단의 총회장을 역임하신 분이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물질적으로도 얼마나 깨끗하신지, 그래서 다들 존경한다. 하지만 그런 분은 으레 가난하기 마련이다. 몇해 전 추운 겨울에 집을 방문했더니 냉기가 들었다. 왜 보일러를 내렸느냐는 물음에 그 정도면 됐다고 하셨지만 젊은 내가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착잡했다. 섬선교회 멤버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다. 무교회 섬을 찾아 선교선(현재 8척)의 운항책임자인 섬 목회자들과 스태프들의 모임에는 꼭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신다. 그때 설교하시는 목사님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의 모습이 이랬을까 싶다. 참으로 진지한 표정이다. 연세가 그러니 만큼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돋보기안경으로도 부족해 확대경으로 더듬거리신다. 내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일을 계속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아마도 박 목사님의 이런 가르침이 있기에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 올 여름에 의료선교차 가거도에 가는데 배멀미를 하면 납작 엎드리지 말고 박 목사님식대로 꼿꼿하게 서 볼 생각이다. 사소하지만 그것까지도 닮고 싶다. 누구인가 ◇박요한 목사=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장을 지냈다. 오랫동안 사역해온 대전남부교회에서 1987년 은퇴했으며 원로목사로 있다. 1983년 이후 매년 100여개 섬을 순회하며 전도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종민 목사=한국성서대학교 및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해 예장합동에서 안수를 받았다. 한국섬선교회를 1987년 창립했으며 현재 회장으로 선교선 방주호 건립과 섬 선교 실태 조사, 섬 목회자 지원 등의 사역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