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 마음을 무척 아프게 하고 떠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 오래 아파하지 않습니다. 배신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망각이라는 평소 내 생활신조 대로 나는 철저히 그를 나의 뇌리에서 지웠기 때문입니다. 나를 아프게 한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 자신의 존재 자체를 철저히 무시하여 내 안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기에 이처럼 심한 모멸감도 없을 것입니다만 암튼 나는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최근 나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잘 모르는 주위의 어떤 분이 눈치 없게 갑자기 옛날의 아픈 기억을 들쑤시더니 나를 향하여 나를 아프게 했던 그 사람을 용서했느냐고 종교적 차원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용서고 뭐고 그 사람에 대한 존재 자체를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그에 대한 감정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분은 나를 통해 '용서'에 대한 정의를 다시 재정립하려는 듯 집요할 정도로 내게 용서를 강요하였습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용서를 하라는지 답답하기만 해서 그 짜증나는 대화를 피해버렸습니다. 그는 내게 '용서'에 관한 것을 말하고 있었지만, 사회적 통념에서의 용서만을 다루었을 뿐, 뭔지 인간 심리의 깊은 곳을 비켜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전, 2007년에 상영하여 극찬을 받은 바 있는 영화 '밀양(The secret sunshine)이 생각났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 역시 용서를 다루고 있었으며, 이 용서의 분기점에서 신과 대립하는 양상을 표현했습니다. 물론 용서 하나만 생각하면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 용서가 어떤 상대적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 분위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용서를 구하는 자가 없는데 용서를 한다면 이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맙니다. 용서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관계에서 주고받는 것으로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든, 용서하지 못 하든 용서를 구하는 자가 있고 또 베푸는 자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절대적 관계에서의 용서가 있습니다. 이는 상대의 의사에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내가 먼저 용서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경우의 용서는 용서받을 대상이 상대적 관계의 인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상대가 용서를 구하든 말든, 용서를 받든 안 받든 관계없습니다. 내가 저를 용서하지 못하는 내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쓸어안기 위해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용서의 모범이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용서를 따르기 원한다면 우리 역시 절대적 기준의 용서를 먼저 나 자신에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자신을 용서한 그 상태에서 모든 것을 종결지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애써 내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데 내가 일부러 찾아가 그에게 나의 용서를 말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꼴이 됩니다. 그리고 내가 말 그대로 내 쪽에서 일방적 용서, 조건없는 절대적 용서를 했다면 구태여 그에게 찾아가 용서를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죄도 강요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니까요. 용서한다면 내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 상태도 제대로 알지 못 하면서 상대를 면회소로 끌어내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좀더 편케 하기 위해 상대방을 통해 확증하고 싶은 이기적 심리입니다. 사실상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이 신에게 분노했던 것은 신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용서받을 대상에게 자신의 용서를 알리므로서 기대하게 되는 보상심리가 뒤틀려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실은 그 용서가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며, 자기자신을 향한 분노와 보상심리에 대한 배반감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용서한다면 용서 그 자체로 끝날 일입니다. 굳이 가해자가 갇혀 있는 형무소로 찾아가 그를 불러내어 용서를 말함이 그나 내나 더 어려울 듯합니다. 가해자는 좋던 싫던 그 앞에 나아와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데 그걸 굳이 내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심리는 좀 이기적인 듯 싶습니다. 그리고 가해자의 마음을 더욱 미안한 마음으로 자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 깨끗한 용서. 이것은 서로에게 뒷맛이 전혀 남지 않는 멋진 용서입니다. 오직 신의 용서에 감사하여 나도 그렇게 용서할 의무만 있음을 알고 그냥 용서하는 것.... 그 용서의 마음이 안 든다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럼, 좀 더 기다려 볼 일입니다. 그리고 그 용서의 마음이 들도록 신께 기도할 일입니다. 신도 우리를 용서하시기까지 그 아들을 보내시면서 참 어지간히 속끓이며 인내하셨을 테니까. 신은 우리에게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 구하기를 바라십니다. 때로 강요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엎드려 절받기 식으로 억지 춘향격인 회개와 사죄의 기도를 원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자는 용서하되,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철저히 응징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위에서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 사죄의 은총을 확신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절차만은 죄인인 인간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제18대 대통령선거를 눈 앞에 두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용서구할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올 해는 교회들이 싸움질들로 서로를 부끄럽게 한 일이 너무 많아 우리 모두에게 회개와 용서가 필요합니다. 크리스마스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용서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졌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용서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2012년 전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용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용서를 하든 또는 용서를 받든 이 해가 가기 전에 용서에 대한 마무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조규남(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