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란 말처럼 따뜻한 말이 있을까?...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가족의 의미는 고향 그 자체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이미 내 동심의 세계에서 모두 그 흔적을 없이한 채 자취를 감추었고, 그것들은 다만 내 기억의 '추억의 동산'에만 묻혀 있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가족을 대할 때 그 가족의 반가운 얼굴과 정감있는 목소리 그리고 그의 독특한 버릇이며 그만의 냄새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를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이 고향 그 자체입니다. 거짓이 난무하는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살이에서 가족만은 그 모든 위선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할 수 있기에 편합니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어느 가정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모든 식구가 옷을 홀라당 벗고 알몸으로 생활한다고 합니다. 가족이니까요. 종교적이나 목사의 입장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를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부터 어린 손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빈부 격차와 학력 차이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동등한 하나님 자녀로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열린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의미가 바로 이렇게 가족공동체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실제 오늘의 교회는 그렇지 못합니다. 세분화 되고 다양한 문화 계층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교회 역시 효율성과 생산성에 중심을 두어, 주일예배 마저도 가족이 따로 따로 흩어져 또래 집단끼리 모여 예배드리게 되므로 분산형 가족 형태가 되어서 통전적 교육이 실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초대교회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가정처럼 좋은 학교가 없고, 부모처럼 좋은 스승이 없다!" 라는 구호가 내가 붙들고 있는 교육철학입니다. 삶의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특히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가정 안에서 부모의 교육을 절대적으로 손꼽습니다. 사실 이러한 교육철학은 가정교육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스라엘의 자녀교육과 같습니다. 공동체란 이름 안에서 정작 그 중심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그 변두리에서 빙빙 맴돈지도 벌써 20년이 돼갑니다. 워낙 자유분방한 성격인 데다가 그 어떤 것으로부터의 구속도 싫어하여 공동체의 의미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비공동체적으로 살아 온 듯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 이상과 현실의 괴리입니다. 천안, 디아코니아자매회 이영숙 언님과의 개인적 교신을 통해 '가족공동체교회인 단비가족교회'를 알게 되어 몇몇 지인들과 함께 방문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공동체를 보아 왔지만, '가족공동체교회'라는 공동체의 개념을 명료하게 내세운 공동체는 처음 보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교회를 공동체로 묶어서 하나의 연합된 몸으로서의 공동체 형태를 표방하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곳에 가족공동체교회인 단비가족교회가 있었습니다. 마치 태고적의 전설을 머금은 듯 고고한 자태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건축인 데도 거기에 100년의 연륜이 묻어난 듯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 꿈을 '가난'과 '인내'라는 두 단어로 지탱해 오고 있는 정훈영 목사님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선교적 관점에서 그의 교회는 비선교적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들어서므로 그 마을이 복음화 되고, 천안 일대가 성시화 되고 더 나아가 이 민족과 세계 열방이 복음화 되도록 그들을 변화시키는 역동적 선교정책이나 전도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마을 안에 들어가 그는 마을 주민의 삶 속에 동화되어 조용히 묻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마을이 교회에 의해 변화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마을 주민들 안에 잠식된 듯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그 결과는 놀랍습니다. 마을에 녹아 들어간 그의 영성이 마을 사람들에게 꽃을 피워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야말로 자연친화적, 마을주민친화적 교회공동체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가족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그들을 끌어들여 가족화 한 것이 아니라,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한 가족처럼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하자 가족이 된 그들이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단비가족교회는 가족공동체교회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속에 들어가야 하므로 주님이 친히 죄인의 친구가 되신 것처럼, 그 자신 가난을 짊어지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난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인내하는 길 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가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그리고 연단으로 말미암아 소망을 품게 하였습니다. 오랜 연륜의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냥 후다닥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공동체는 그 사람이 인생을 살아온 나이나 그 외의 어떤 지식 경험 등의 연륜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공동체의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경험적 바탕 위에서의 '공동체의 경륜'을 토대로 공동체론을 논해야 한다고, 나와 함께 동행한 한국 디아코니아자매회의 이영숙 원장님이 나의 경박함을 깨우쳐주려는 듯 넌시지 말했습니다. 하기사 그녀는 실제적으로 공동체의 삶을 33년, 그리고 독일 가족공동체에서 한국 공동체를 경험하러 온 70세의 독일인 한스 형제는 30년을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들 앞에서 잠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동체를 꿈꾸는 것은 서로가 연합해야 하는 공동체 의식이 우리 안에 너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고, 이 현대사회 구조 안에서 이 '공동체성'을 품고 표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공동체의 삶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너무 안일했고 어떤 면에서는 현실 도피적 뜻도 숨겨져 있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섹터(sector)화 된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 세상과 더불어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함께 고민하며 어깨동무 할 수 있는, 그리하여 그 가운데 성령의 강물이 자연히 흘러넘쳐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가족공동체교회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 모두에게 이상향입니다. 그러나 지금 실제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들입니다. 봄의 입김이 내 빰에 느껴질수록 나의 살던 고향, 그 꽃피는 고향의 봄이 더욱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 조규남(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