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새벽기도를 드리기 위해 집문을 나섰을 때 뺨에 와닿는 봄바람을 통해 와락 봄기운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왜 이리 눈물이 나도록 모든 것이 감사한지요... 왜 이리 세상이 아름답게 여겨지던지요... 그래, 오늘 새벽기도회의 찬송은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 가사가 담긴 내용이었습니다. 꼭 1년 전 마음을 의지하고 있는 외동딸을 갑작스럽게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전해왔습니다. 그 딸이 남긴 코흘리개 어린 자식 하나를 붙들고 그래도 잘 참아왔던 늙은 어머니의 기도와 인내가 아려왔습니다. 과거의 아픔은 지금 당한 현실의 문제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아파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이 어머니에게 지난 1년은, 그리고 사랑하는 딸이 없이 지내야 하는 겨울의 밤은 너무 길고, 너무 추웠습니다. 그래서 더욱 봄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어린 생명 하나를 바라보며 모질게 겨울의 추위를 이겨냈습니다. 세상은 뿌옇게 황사로 뒤덮이고 하늘은 해를 가리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습니다. 세상의 하늘이 아무리 잿빛 하늘일지라도, 때로 절망의 그림자가 마음을 짓누르게 엄습할지라도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며, 일시적일 뿐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다는 그 사실이 때로 사실이 아닌 허상처럼 느껴져 그게 더 두렵습니다. 내 믿음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는 저것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저것은 실체입니까? 아니면 나를 지옥의 문으로 이끌고 가는 두려움의 허상입니까? 진리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내가 울부짖을 때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로 소망의 길을 보여주신다고 약속하신 그 신실하신 하나님은 지금 무엇 하고 계시는 겁니까?! 왜 아무 응답이 없이 침묵만 지키고 계신 것입니까?! 때로 육은 살아있을지라도 영은 이미 죽어버린 영혼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 영혼들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제로는 죽은 것입니다. 좀 더 오래 살고 않고의 시간문제일 뿐인데, 이 땅 위에서 인간이 소유하는 시간이라는 것도 영원이라는 시간 개념 앞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이 역시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시간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유무도, 믿음의 사실 여부도, 구원에 이르는 확신조차도 이 모든 인간의 의문과 생각들을 잠시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냥 조용히 그분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믿음 없음을 탓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자신의 믿음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자신 스스로를 들볶지 마십시오.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2:4)고 말씀하시지만, 또한 성경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롬3:10)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삼단논법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도 자의적인 것이 아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은총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단 살아남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합니다. 죽음은 아무리 미화시킨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속이는 최악인 것입니다. 이 죽음의 겨울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은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없습니다. 누가 봄을 기다리는가? 겨울을 지낸 사람들, 겨울이 쉬 지나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겨울이 쉬 지나기를 바라는가? 겨울 동안 겨울의 찬바람 속에서 인내하며 생명의 씨를 품었던 사람들입니다. 누가 봄을 맞이하는가? 겨울의 혹한 속에서도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입니다.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배고픔도, 갈급함이나 변화에의 갈망도 그리고 그 어떤 기대감도 없는 사람에게는 봄이 없습니다. 봄은 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리고 문을 열고 봄을 맞이하는 사람에게만 그 존재를 알립니다. 봄의 의미는 죽음으로부터의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주님의 날(The Lord's day), 십자가의 크기 만큼 우리 머리 위에 쓰여질 승리의 면류관도 큽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의 부활, 그 부활의 진리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고, 그래서 눈밭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꽃을 피운 장미의 봄을 맞이해야 합니다. 누군가 눈밭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장미를 보기 위해 살짝 왔다 간 그 발자취의 흔적처럼. 그리하여 이 세상 모든 것이 참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세계임을 찬양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조규남(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