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아침, 아주 짧은 단문의 특별한 메일이 하나 들어와 있었습니다. "목사님을 잠재의식 중 깊이 미워했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발신자는 예전에 우리 교회에서 나름대로 제자훈련을 받다가 이미 오래 전 교회를 옮긴 청년이었습니다. 그 메일을 접한 순간 잠시 그와 관련된 여러가지 상념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스스로 감사하게 생각한 것은,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이 조금의 미움도 없이 여전히 애정어린 아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아프기만 합니다. 미움으로서가 아니라 사랑때문입니다. 그를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짠~ 하고, 그저 답답함 뿐입니다. 긍휼한 마음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생활에 적응치 못하고 따로 지역의 정신보건센터를 통해 관리를 받으며 약을 복용 중에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좀 상태가 심하다 싶으면 폐쇄 병동에 잠시 입원하기도 합니다. 나는 그에 대해 유별날 정도로 특별한 애정이 있었고, 실제 그를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남들은 좀 이상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듯 하지만, 나로서는 그에게 별 이상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나는 그를 통해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배우고 실제 몸에 익힐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기에 그리고 그의 맘을 살펴주는 배려가 있기에 나는 그의 모든 것이 이해되고, 그가 내게 전혀 불편하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오히려 그를 통해 나름대로 깨우치는 바가 많았습니다. 물론 그에게는 일반적이지 않는 어떤 별스런 면모가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 자체가 그만의 특성과 개성이라고 여겨졌기에 내겐 전혀 이상스러울 게 없었습니다. 남이 이상한 눈으로 보는 그만의 특성을 나는 그만의 개성이라고 인정해줘 오히려 그에게 그 부분을 장점으로 살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고, 이런 나의 태도 때문인지 그 역시 나와 함께 있으면 맘이 편한 듯 하여 나를 가까이 따랐습니다. 그는 나와 가까이 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우선 그의 외모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그 나이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었는데, 나름대로 현실적인 옷감각을 살리기 시작했고,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 이라는 구호대로 그는 헬스장에 나가기 시작하여 멋진 몸매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가 여러 면에서 자신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붙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삼십대의 건장한 청년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이성의 관심과 결혼에 대한 욕구 문제입니다. 사실 그는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여 성적 욕구에 대한 문제를 나름대로 신앙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혼외의 성관계'는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혼인관계 이외에는 축복의 행위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율법적인 기준을 제시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통로는 제시하지 못 했습니다. 그가 개방된 성문화의 현대사회에서 겪는 개인적 본능 욕구의 고통은 그 개인의 몫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적장애인들은 결혼하기 어렵습니다. 시각장애나 청각장애 그리고 신체장애자들은 결혼할 수 있습니다만, 정신영역에서는 어렵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적장애는 외관상 가장 멀쩡하지만 정신세계의 소통단절로 가장 힘든 삶을 보내게 됩니다. 나는 그에게 이러한 현실은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들아~ 너는 평생을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며 그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라고 말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교회 안에서 마음을 두게 된 여자가 생겼습니다. 믿음도 좋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그래서 어디나 내놓아도 자랑할만한 자매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매에게 이미 결혼을 약속한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저돌적으로 밀어부치는 그의 애정공세가 그녀에게는 큰 짐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결혼일을 한 달 앞두고, 그에게 상황 설명을 하며 그녀를 단념할 것을 종용하였습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떨구고 잠시 순종하는 듯 했으나, 오히려 그녀를 괴롭히는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나는 그에게 엄한 징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곧 결혼하게 될 그녀를 포기하든가 아니면 교회를 떠나라는 가혹한 책벌이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결혼 이후로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즉시 답신을 보냈습니다. 고맙고 가벼운 마음이라기보다 여전히 무거운 마음으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용서고 뭐고 말할 것 있겠느냐? 내가 용서할 일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를 용서하셨던 그 시점에 이미 나 역시 용서받고 또 용서했으니까... 편한 맘으로 열심히 신앙생활 하기 바란다. - 조목사 -" 사실 그가 내게 용서를 구할 일은 없습니다. 유행가의 가사처럼 그에게 죄가 있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한 죄인데, 문제는 그 사랑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이어야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로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남녀간의 사랑은 그가 스스로 단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에게 네가 생각하고 있는 인간적 사랑은 너에게 맞지 않으니 버리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나는 정말 이럴 경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습니다. 스스로 고자(鼓子 eunuch 마19:12)된 자가 아니라면 이야말로 인간이 겪는 형벌 중에 가장 극심한 고통의 형벌일 테니까 말입니다. 이 문제는 그나 내나 서로의 사이에서 용서를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만을 구해야 할 일입니다. 얼마나 내게 마음에 상처가 깊길래 잠재의식 안에서 깊이 미워했는지, 그리고 이제 그 용서를 구하는지... 그의 표현대로라면, 어쩌면 나는 그동안 그에게 깊은 미움을 안겨 주었던 '나쁜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갖지 못한 자, 가질 수 없는 자가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본능적 욕구로 말마임아 이웃을 어렵게 한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가진 자가 자기 것으로 만족치 않고 이웃의 것을 탐내는 것입니다. 이웃의 것에 대한 탐심으로 그치지 않고 직접적인 행위로 침략자(invader)가 되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가장 나쁜 이웃, 나쁜 나라입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땅과 재산을 빼앗을 뿐더로 처녀의 몸을 위안부로 더럽히게 하였습니다. 건장한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고 가 죽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나쁜 이웃입니다. 내 아들 딸 들을 전쟁의 죽음터로 그리고 그 어미의 마음을 찢어지는 고통 속에 몰고 간 나쁜 이웃 나라입니다. 그러면서 용서를 구하기는 커녕 멀쩡한 정신으로 점점 더 침략자의 면모를 더해가니 납득이 안 되고 용서가 안 됩니다. 어미 청둥오리의 비명을 뒤로 하고 그 새끼를 빼앗아 입에 물고 달아나는 저 하얀 갈매기의 눈빛이 아주 고약합니다. 겉만 하얗지 속은 나쁜 갈매기입니다. 같은 조류과라도 아주 질이 좋지 않은 변종입니다. 오늘 아침 삼일절에 생각나는 '나쁜 이웃'이었습니다. 일본이 이제 와선 독도문제까지 저렇게 주장하고 나선다면 정말 저들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을까 하는 마음 깊은 곳에서의 미움이 치솟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붙잡아야 할 것은 그들이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는 '구원의 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사랑의 마음이 솟구치지 못하는 내 마음을 스스로 탓하며, 자신이 혹시 누구에겐가 '나쁜 이웃'으로 기억될지 두려운 마음을 갖는 아침입니다. - 조규남(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