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인간을 열어 보았을 때 내가 발견한 것은 '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어떤 법칙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 즉 내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C.S.Lewis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위와 같이 말한 내용의 글이 선뜻 이해되지 않아 골몰히 생각하고 있던 차에, 어제 K. Sun의 전화를 받은 이후 나는 그 말뜻을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오늘이 제 생일이에요." "오~ 그래. 암튼 생일 축하한다." "네, 감사합니다....." 그의 생일에 대한 이야기는 짧막한 몇 마디의 의례적인 대화로 끝이 났습니다. 그는 분명 나의 입에서 자신의 생일 축하에 대한 그 어떤 것의 말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어떤 약속도 하지 못했습니다. 전화를 끊을 때 그의 음성은 힘이 없었습니다. 그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서 집과의 거리가 멀지 않았지만, 그의 생일을 기념해주기 위해 그에게 찾아가는 일까지는 내게 부담스러움이 있었습니다. 망설임 끝에 그냥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지나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간밤에 결코 편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주께서 찾으시는 제자의 도리가 편치 못한 가시관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 라는 말씀이 그랬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매우 서운해 한동안 전화도 주지 않을 것같이 생각됐던 그로부터 아침에 뜻밖의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어제 그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자 그는 아주 밝은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잠시 서로의 일상에 대한 몇몇 이야기를 나눈 후 그가 갑자기 굳어진 목소리로 내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로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오~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이제 35번 째의 생일을 맞았습니다. 누구 하나 함께 기뻐해주기는 커녕 위로의 말조차 해주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생일이었을 것입니다. 앞을 못보는 시각장애인이요, 다리 하나가 없는 신체 불구자요 그리고 일주일에 4시간씩 세 번을 신장투석 해야 생명을 유지하는 이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주의 말씀을 듣는 일밖에 없음을 주께서 잘 아십니다. 주 이외에는 그의 가족도 그를 버렸고, 그를 찾아주는 특별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러한 그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주님, 때로 죽고싶은 마음만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주위 사람에게 짐만 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삶이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이 힘에 버겁고 두려울 뿐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런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존재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더욱 답답합니다. 그러나 주님, 이 아들을 지금까지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주님의 뜻이 분명 있는 줄 믿습니다. 가난하고 나약한 이 아들을 통해 부한 자들이 겸손해질 수 있게 하시고, 강한 자들이 부끄러워질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이 아들을 보면서 나의 게으름과 사악함을 그리고 불신앙을 회개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우리의 심령을 건드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음을 알게 하시고, 나르는 새나 들에 핀 꽃들을 하나님께서 거두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내가 간절한 마음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간간이 그의 흐느끼는 소리가 있었고, 막상 기도가 끝났을 때는 사막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잠시 우리 사이에 깊은 정적감이 맴돌았습니다. 잠시 주어진 짧은 시간의 정적이 내 안에 있는 모든 핑게와 위선과 나의 의를 함께 잠재워버렸습니다. 아프카니스탄의 전쟁 지역에서 거리의 부랑자 개처럼 먹을 것을 찾고 있는 파슈툰(pashtun) 족 어린 소녀의 눈빛이 강렬합니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열망 이외에 그는 아무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때로 우리의 철학적 사변들이 너무 사치스럽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숨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내가 태어난 이유로서의 충분한 삶을 우리는 우리 주변 곳곳에서 발견하고 있으니까요. 바로 며칠 전 사무실에 있는 내 전용 컴퓨터에 내장된 D드라이브의 자료들이 모두 날라갔습니다.그 안에 무려 380 GB의 수많은 자료들이 동네 콤퓨터 수리공의 실수로 포맷된 것입니다. 갑자기 멘붕 상태가 되었고, 어찌할 바 몰라 안절부절 했습니다. 오늘 내 새로운 결정은 삭제된 자료들의 복구를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제 난 영혼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 앞에서 핑게할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새로운 기대감으로 새로운 창조역사를 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내 삶의 존재 이유'를 되물을 것입니다. - 조규남(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