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색 황금 '소금' 소금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죽는다

바다에서 시작돼 요리 속에 녹는다

"여, 소금이 온다!"

뙤약볕이 염전에 가득 내려 쌓이는 전남 신안군 신의도의 늦여름 오후. 뻘 너머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에 들뜬 염부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소금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염부가 갯논에 바닷물을 모아 놓으면 햇볕과 바람을 타고 '온다'. 염전에 쌓인 볕을 바다 건너 온 미풍이 간질이듯 훑으면 어느 순간 못 참겠다는 듯 '온다'.

소금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바닷물과 햇볕과 바람이 만나는 수면이다. 바닷물과 햇볕과 바람이 만나 태어난, 물 위에 뜬 소금 씨알을 염부들은 "꽃이 폈다"고 한다. 갓 피어난 뜬 소금은 계속 햇볕과 바람을 머금으며 몸집을 키우고, 마침내 제 몸무게를 못 이기고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물속에서 다시 바닷물을 빨아들이며 점점 살이 찐다. 이것이 하늘이 내려 준 선물, 천일염의 탄생과 성장이다.

"꽃소금(뜬 소금)이 풋풋한 소녀라면 물속의 소금 결정은 농익은 처녀"라는 자신들의 표현대로, 염부들은 소금을 딸 다루듯 애인 다루듯 한다. 꽃소금이 뜰 때는 염전 주변으로 차도 몰지 않는다. 뿌옇게 이는 흙먼지도 나쁘지만, 요란한 소리와 진동에 소금이 놀라기 때문이다. 꽃소금이 가라앉고 나면 수시로 염전을 들락거리며 눈길을 주고 자람새를 살핀다. 농작물이 그렇듯, 소금도 염부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

해거름 녘, 벌건 해가 노래지고 바람도 잠시 숨을 돌릴 때면 이제 염부들이 바빠질 시간이다. 염부들은 저마다 대파(소금을 긁어모으는 고무래)를 챙겨 염전으로 나온다. 사르륵사르륵 스르륵스르륵. 부산한 대파질 소리에 맞춰 이내 염전에는 하얀 뭍(?)이 돋기 시작하고, 염부들의 잰 손놀림에 밭마다 도도록한 소금 봉우리가 하나씩 솟는다.

채염한 소금의 물기가 빠지기를 기다려 소금창고에 쌓는 것으로 염전의 하루는 마무리된다. 이때쯤이면 새참으로 걸친 막걸리 한잔에 염부들의 일손도 빠르다. 강고(소금을 져 나르는 질통)를 진 이도, 수레를 끄는 이도, 창고 가득 쌓이는 소금에 자못 신이 났다. 이게 곧 '하얀 황금' 아닌가. 햇볕이 있고 바람이 있고 바닷물이 마르지 않는 한 소금농사는 계속될 것이다.

소금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죽는다. 바다에서 시작된 소금 알갱이가 방방곡곡 각 가정으로 전해져 다시 온갖 요리 속으로 녹아듦을 이르는 말이다. 소금 사용량이 가장 많은 소금 대목 김장철이 머지않았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만들어진 소금이 죽을 날도, 아니 최고의 약념(양념의 옛말)으로 살아오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승환 기자 출처 -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