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화려한 도시 전체가 내 땅인 것처럼 30년을 휘젓고 살았던 그가, 배구하다 실수하면 바다로 떨어지는 초등학교(분교) 미니운동장이 보이는 작은 섬 언저리에서 낯설고 물 설은 낙도 생활을 연습도 없이 하게 되니 모든 것이 좌충우돌이다. 싱크대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쏴~하고 나오는 편리함에서 물동이로 우물물 길어다 생활하는 불편함은 시작되었다, 세숫물도 그냥 버리지 못하고 발 씻고, 발 씻는 물로 걸레 빨고 마른 마당에 먼지가 날리니 골고루 뿌려준다. 우물물 특유의 냄새가 배어 있는 그릇들 마다 소독 냄새가 아닌 물비린내가 나고 심지어 숟가락 젓가락에서도 물비린내가 진동하여 한동안 물비린내 증후군에 시달렸다. 이웃집에서 생선을 주면 반가움은커녕 다듬을 줄 몰라 멀쩡한 생선을 갈기갈기 찢어 놓기 일쑤다, 또한 생선비린내 때문에 쳐다보기도 싫어하여 한쪽에 버려지듯 하면 파리 떼만 춤을 춘다. 생선 비린내로 비린내 증후군은 더 심해졌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혹시? 혹시……. 가 역시였다. 입덧이었다. 꿈같은 광경이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나도 이제 자식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이웃집에서 생선을 가져 오면 유난히 웩! 웩! 거리는 것은 나를 고자라고 낭설을 퍼뜨린 사람들, 색안경 끼고 바라보고 있을 그들에게 고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유난을 피웠다. 비린내 증후군이 유난스럽다고 핀잔 준 것을 곧 후회했다. “고기……. 좀 사와요.” “뭔, 고기가 그렇게도 먹고 싶어요?” 고기 사오라는 말에 짜증이 났다. 매주 월요일이면 신학교 갔다가 토요일이면 섬으로 돌아오는 가난한 신학생입장에서 어느 때는 차비가 없어 쩔쩔매는 생활 중에도 매주 마다 고기를 사다 주었는데 오늘 따라 순간 짜증이 났다. 나의 식생활은 채식 위주며 생선과 해초가 인박힌 생활이다. 아내의 친정 식생활은 아침 점심 저녁을 육 고기로 인박힌 생활이었다. 거기에 임신까지 해서 유난히 고기를 찾았다. 고기 먹고 싶은 그 입장을 어느 정도는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은 왠지 짜증이 났다. 왜 짜증을 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기를 원하는 대로 사 줄 수 없는 내 처지가 짜증나 퉁명스럽게 대답한 것을 깨닫고 ‘여보 미안해~, 아가야 미안해~.’를 마음속으로 되네 이었다. 임신 중에 먹고 싶은 것 못 먹으면 아기 눈이 짝 눈 된다는데 아이가 짝눈으로 태어나면 어쩌지?......를 배를 타고 가는 긴 시간 그런저런 생각으로 가고 있었다. 고기를 충분히 사오지도 못했고,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도 받지 못했지만 아이는 10달 동안 태방에서 잘 자라고 있다. 세상에 태어날 시간이 임박해서야 서울 고려대학병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산모를 염려하는 장모님이 병원분만을 택한 것이다. “정서방 자네 아빠 됐네. 아들이야!” “네? 뭐라고요.” “아들 났다니까. 순산했네. 자연분만으로 산모도 건강해~” “어머니 감사 합니다.” 대둔도로 걸려온 전화는 1987년 8월 15일 오전 10시, 결혼 15개월. 서울 고려대학 병원에서 자연분만으로 아들이 태어났다. 38세, 다른 사람 같으면 늦둥이 볼 나이에 아들 맛을 처음 본 나는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8월15일은 우리민족이 해방의 감격을 벅찬 기쁨과 환희로 반기는 날이다. 나의 기쁨을 통해 해방 그날의 감격을 공감하는 의미에서 아들 이름을 ‘광복‘이라고 지었다.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환희를 안겨주는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도 함께 담았다. - 정삼섭(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