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이슬비 오면 방에서는 소나기가 오는 춘향이 집 같은 사택을 수리하기 위해 온 교우들이 분주하다. 점심 후, 교우들 동작이 느려지고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알아 봤더니 목사님이 배를 공개적으로 팔지 않고 비공개로 팔아서 기분 나빠 일 할 맛이 안 난다며 겉돈다. 내 말은 들어 보지도 않고 기분 나쁜 입장만 내 세운다. 급기야 마지막 단계인 도배와 페인트 작업하다 중단이다. 그리고 데모를 한다. “목사는 이교회에서 떠나랏!” 목사가 떠나야 교회가 조용할 것 같다며 목사가 나가는 것만이 문제 해결 지름길이라고 한다. 목사는 교인들을 위해 존재하지만 교인들이 반대하면 다른 대책이 없다. 곧 떠나야 한다. 한글도 모른 문맹자를 데려다 한글을 가르치고 신앙의 기초를 다져 주었건만, 하찮은 이익 앞에서는 앞뒤도 없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니 배신감이 들고 서글퍼진다. 허무할 뿐이다. 더 이상 이교회에 대한 미련은 없다, 떠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오해는 벗고 가고 싶다. 비공식으로 배를 팔은 것도 곧 교회를 위한 일이지만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 망설여진다.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아내가 말했다. “여보. 어서 교회 좀 알아봐요.” “좀 더 있다가 알아보지.” “뭐요? 더 있다가 언제요?” “상황이 좋아지면 그때 알아보려고.” “흥, 좋아지면 또 눌러 앉으려고?” “진짜야 나 이교회 미련 없어 한 달만 있으면 문제가 해결 되. 불명예스럽게 가고 싶지는 않아.” “미련 없긴...... 좋아지면 다시 눌러 살려고 그러지? 무슨~ 미련이 그렇게도 많아 못 떠나고 그래!! 당장 노회 안에 갈만한 교회 있는지 알아 봐욧!!” “......”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내 말 안 듣고 버티다가 꼴 좋~네!” 핏대를 올리며 당장 교회 알아보라는 기세가 만만치 않다. 한 달만 참고 기다려 보라고 하지만 막무가내다. 교인 20명은 이길 수는 있어도 아내 한 사람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10년 동안 한 번도 내 뜻을 거스르지 않았던 아내의 내면에 감춰진 단칼배기 성격이 들어 있는 줄 몰랐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반항적이며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 하는지 알 수 없다. 너무 답답하다 못하여 화가 났다. “에잇, 밥통 같은 인간들아! 밥이나 쳐 먹고 밥통 같은 생각들이나 해라!!” 아내가 앉아 있는 쪽을 향해 밥통을 높이 치켜들어 방바닥에 내 던졌다. 밥통이 박살나면서 뚜껑이 열어져 온 방안은 밥 알갱이가 튕겨지고 널브러져 밥 난장판이다. 일하는 교인들에게 점심을 주기위해 밥을 한통 해 놨지만 뿔이 난 교인들이 밥을 먹지 않아 밥통에 밥이 한 가득 들어있었다. 방안이 소란스러워 방문을 빼꼼이 열어본 교인이 밥 난장판을 보고 얼른 문을 닫고 가버린다. 결혼생활 10여년 넘게 살면서 그동안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는 우리는 처음 있는 일이다. 남편 앞길을 가로막는 내조는 하고 싶지 않다던 그녀가 오늘은 달랐다. 그동안 마음속으로 누르고 눌러 놨던 감정이 오늘에서야 용수철처럼 튕겨 올라온 것이다. 나는 나대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와서 눈 흘긴다‘ 더니 교인들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아내한테 폭발한 것이다. 집에 오면 위로를 받을 줄 알았는데 집에 오니 한 술 더 뜬다. 내 마음이 압박을 받아 순간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할 만큼 했고, 있을 만큼 있었고. 교인들이 가라고 하는데 더 있을 이유가 뭐가 있느냐…….” 아내의 말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택수리 작업은 20일째 중단이다. 늦은 오후, 데모를 앞장서서 주동했던 집사님이 또 찾아 오셨다. 가슴이 철렁했다, 또 무슨 일로 찾아 왔을까? “목사님 죄송하요, 보약한재 지어 드세요.” 봉투하나를 내밀었다. “목사님이 지금 떠나시면 우리가 평생 죄인 돼지라우, 절대 가면 안돼요.”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데 용서 안 해줄 이유가 없다. 용서라기보다 ‘잘 몰라서 그랬지...’로 해석하고 교인들이 죄인 안 되는 시기에 떠날 것을 아내와 약속하고 오랫 만에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 정삼섭(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