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호 편지(472)ㅣ방주11호 최경숙 전도사(흑일도교회)
			제가 사는 흑일도는 모래가 검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모래는 이곳에 없는데 왠일로 그렇게 불리게 된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쉽게 가지 않은 변두리 해변에 가면 검은 모래가 있나 하는 설레이는 마음이 있습니다. 흑일도 주변에는 많은 섬이 있습니다만 가장 가까운 곳에 두 섬이 있습니다. 동화도와 서화도가 바로 그 섬입니다. 동쪽과 서쪽에 있는 꽃섬인 셈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꽃섬이라고 했을까요? 예전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삭막합니다. 사람들이 떠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먼저 동화도로 배를 몰았습니다. 이곳을 오간지도 삽십 년이 흘렀습니다. 그때는 남편(정광섭 목사)이 운전대를 잡고 저는 조수였는데 지금은 제가 운전대를 잡고 있습니다.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다는 한결같고, 바람따라 일렁이는 파도를 헤치도록 돕는 주님도 여전하시니까요.
	동화도는 집터를 이룰 만한 평지가 없어 언덕위에 집을 다닥다닥 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착장에서 동네에 가려면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야 한다. 노인들에게는 힘겨운 언덕길이다.		동화도를 처음 찾을 때는 여덟 가정이 있었습니다. 넓은 평지가 없어 가파른 언덕길을 다듬어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선창에서 내려 동네로 가는 계단길이 조금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면 누구라도 반가운 얼굴로 반겨주셨습니다. 어느 해 부터인지도 모르게 한 가정씩 육지로 이사를 가거나 세상을 떠난 분들로 섬은 비워져 갔습니다. 그러다가 십 년 전부터는 할머니 한 분만 남겨졌습니다. 다행인 것은, 전복양식과 멸치를 잡는 분이 육지에서 들어와 살게 되어 섬이 아주 삭막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바다 양식장에서 늘 계시기 때문에 얼굴 보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이 분 때문에 동화도는 두 집이 사는 섬입니다. 할머니를 만나면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얼른 동네 둘러보시고 우리 집으로 오세라’ 하십니다. 이유를 물으면, 점심식사를 준비할테니 꼭 먹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 말 속에 외로움이 한껏 묻어있음은 물론입니다. 열심히 움직여야 건강하다면서 두툼한 손으로 멸치 어장의 일손을 도와주시신 부지런한 분이십니다. 선착장에 내려 전복 아저씨를 만나니 할머니 걱정을 먼저 전해주셨습니다. 마을과 선착장을 잇는 언덕길을 오르내리기 힘들 정도로 할머니가 쇄약하시다는 전갈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을 도와주시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서둘러 계단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니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방주호 엔진 소리를 듣고 제가 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초라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이가 구십 세가 넘으셨으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앞서면서 두 손을 잡고 한참을 눈물지었습니다. 할머니는 담담하셨습니다. 이제는 갈때가 됐다는 말을 하면서 오히려 저를 위로합니다. 병원에 가자는 저의 말에 ‘다 아는 병’이라고 하며, 이대로 가면 딱 좋다는 말도 하십니다. 할머니를 지켜 주실 분은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에 얼굴이 활짝 펴시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진한 수심이 얼굴 가득히 차 있었지만 점차 주님의 평안이 깃들어 소녀같이 복스런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동화도 선착장을 빠져나오면서 하는 기도는 거의 같습니다. 000 할머니를 지켜주세요. 저는 이 섬을 떠나지만 주님은 항상 할머니 곁을 지켜 주실 줄을 믿습니다.// - 최경숙(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