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호 편지(488)ㅣ방주6호 김홍윤 목사(마도교회)
			섬이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육지를 말합니다. 육지는 육지인데 사면이 물로 둘러싸여 육지에서 분리된 육지를 말합니다. 제가 사는 마도 섬은 남해안의 유명한 한려수도 국립공원의 중심이 되고 작은 섬들이 마치 신작로의 자갈돌처럼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어 여행객들은 아름답다고들 하십니다. 웬만한 지도에는 점으로도 나오지 않는 작은 섬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지도 축적 1:60,000 남해.하동 전도에는 10센티 크기로 일곱 개 섬 중에 가운데 마도라는 이름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산도 없고 계곡도 없고 들판도 없고 논도 없는 이 섬에 옛날 흉년 보릿고개를 어떻게 보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은 전기가 들어와 밝게 살고, TV와 냉장고 등 현대문화를 누리고, 수도도 들어와 살림살이에 불편함 없이 삽니다. 그러나 사방이 바다라 배 없이는 육지에 나갈 수 없는 틀림없는 섬입니다. 구름도 흐르고 바람도 흐르고 새도 흐르고 사방의 바닷물도 쉬지 않고 흐르고 움직이는데 섬은 흐름이 없고 움직임이 없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 건너 육지는 차가 흐르고 사람도 움직이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고 살아나는데, 섬은 사람도 멈추고 배도 멈추고, 멈추고 멈추어서 썩어가는 부유물만 쌓이는 섬으로만 물 위에 떠 있을 뿐입니다. 잔잔한 호수처럼 관광객들의 마음만 흥분시켜 사진기 셔터만 눌러대는 포인터가 될 뿐입니다.
	지난 2월에 요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 집사님이 잠자는 듯 돌아가셨다. 섬에서 태어나고 섬에서 고기잡이하고 섬에서 결혼하고 섬에서 자녀들 키우고 섬에서 예수 믿고 교회 집사가 되고 83년을 섬에 갇혀 섬으로 사시다가 결국 죽어서야 섬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골목길을 나섰습니다. 98세 용준할아버지께서 더위를 피해 골목 입구에 오래전에 버려진 폐 가옥 마당에서 자라 담을 넘어온 넝쿨 식물 작은 그늘에 맨발로 앉아 쉬고 계십니다. “할아버지 왜 이렇게 맨발로 걷습니까? 발에 상처가 나면 큰일 납니다.” 할아버지 대답이 “TV에서 맨발로 걸으면 혈관이 자극을 받아서 좋다고 하더라.” 살아있다는 움직임입니다. 연세 많으신 할머님 네 분. 지팡이를 의지하고 밀고 다니는 손수레를 의지하여 천천히 노인정으로 모이십니다. 그리고 나란히 자리에 누워 TV만 쳐다보십니다. 맨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귀가 먹어 작은 소리는 듣지를 못합니다. 소통이 끊어졌습니다. 서로의 작은 섬으로 나누어져 살아갑니다. 가끔 다투는 듯 큰 소리가 골목을 꽉 채웁니다. 오랜만에 부부의 대화입니다. 어쩌다 이웃 간에 말다툼이라도 생기면 화해라는 것이 없이 서로 섬이 되어 살아갑니다. 지난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잠시 쉬는데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마도교회가 세워지고 첫 열매인데 주님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장맛비가 폭우로 쏟아지는 시간에 장례식을 다 마치고 봉안실에 안치해 놓고 섬으로 돌아오면서 갑자기 섬사람들의 애환이 내 가슴에 북받쳐 올라왔습니다. 우리 교회 신입 1호 세례 1호 집사 1호 키가 크시고 신발도 커서 배만 한다고 놀리기도 했지요. 성격이 무뚝뚝하고 우직한 성품이지만 반신불수의 장애를 입은 아내의 손발이 되고 교회의 든든한 일꾼이었는데 건강상 문제로 지난 2월에 요양원에 입원시켰는데 갑자기 잠자는 듯 돌아가셨습니다. 섬에서 태어나고 섬에서 고기잡이하고 섬에서 결혼하고 섬에서 자녀들 키우고 섬에서 예수 믿고 교회 집사가 되고 83년을 섬에 갇혀 섬으로 사시다가 결국 죽어서야 섬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우리 집사님의 일이라고만 하겠습니까. 40여 년을 섬 교회 목사로 세 딸아이를 낳고 가르쳐 서울로 대구로 섬에서 탈출시켜 놨지만, 왠지 섬 가까이서 사는 아이들이 부럽습니다. 자주 섬에 사는 부모님을 찾아오고 또 섬 부모님이 잠시나마 섬을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저도 아내와 함께 아이들 핑계로 가끔 섬을 탈출해 나갑니다. 시장 속으로 들어갑니다. 사람들 무리에 섞여 이유 없이 흘러갑니다. 부딪치고 부딪치며 사람 냄새를 맡으며 나도 살아있음을 확인합니다. 사람에 대한 갈증이 해갈되는 것 같습니다. 시원한 냉수를 한 사발 벌컥벌컥 마신 기분으로 섬으로 돌아옵니다. 살아 움직이는 섬을 만들어 보려고 꿈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장벽이 너무 높아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요. 섬은 섬으로 남아있어야 아름답다고 하시는 분들 섬마을 체험하러 우리 섬으로 한번 오십시오.// - 김홍윤(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