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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파도와 뗄 수 없는 곳이 섬이고, 섬 이름에 '풍'자가 들어가 있다면 당연히 바람 풍(風)을 쓰는 '바람섬'이겠지 생각한다. 그러나 풍도(豊島)는 예상을 뒤엎는다. 여느 섬 못지 않게 바람이 많지만 '풍요로운 섬'이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한편으로는 단풍나무가 많아서 풍도(楓島)라 했다는 말도 있다. 한자로 섬 이름을 어떻게 표기하든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귓전에 들려오는 '풍도'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고 친근하다. 인천연안부두에서 풍도까지 뱃길로 2시간 30분 가량, 왕경호가 정기적으로 하루 1회만 운행해 교통의 오지에 속한다.
풍도는 물이 맑고 몽돌해수욕장이 있으며 빽빽한 원시림이 꽤 볼만하다. 무인등대이기는 하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빨간 등대가 있다. 서해안에 있는 만큼 또한 해넘이가 아름답다.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무너뜨린 당나라의 소정방이 본국으로 돌아가던 중에 풍도의 경치에 취해 한 달간 머물렀다는 말이 전해온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랬을까 싶은 대목이다. 풍도의 대표적 희귀식물인 풍도 대극을 비롯해 변산 바람꽃, 복수초, 현호색, 노루귀, 광대나물, 꿩의 바람꽃 등등 솜털 보송한 야생화들이 섬에 피어난다. 그리하여 근래에는 '꽃섬 풍도'라는 말을 주저 없이 사용한다. 어느 누구는 '한국의 갈라파고스' 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꽃이 피는 것도 한철이고, 카메라와 낚싯대를 들고 오는 외지인의 발길도 섬에 잠시 머물다 빠져나간다. 모두 한철이요, 한때뿐이다. 세월 따라 섬에 살던 주민 또한 육지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 없이 섬과 함께 하는 것이 은행나무다. 수령 500년이 되어 이제는 보호수가 되었으나 언덕 위의 길 한쪽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섬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또 하나 더 있다. 튼튼한 돌담 위에 반석처럼 세워진 아담한 풍도반석교회(김정순 목사)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83년 6월에 갯냄새 맡으며 한 처녀 전도사가 어머니(김부전)와 함께 이 한적한 풍도에 찾아들었다. 이사 온 첫 날은 때마침 수요일이었다. 모녀는 셋방에서 조용히 무릎 꿇고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풍도반석교회의 첫 예배다. 그 때의 김정순 처녀 전도사가 목사 안수를 받고 섬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면 다들 놀란다. 풍도에 자신의 뼈를 묻을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것도 처녀의 몸으로 혼자서.
김정순 목사는 특이한 섬사람들의 생활에 주목을 했다. 섬에는 가파른 절벽이 많고 갯벌이 없어서 굴과 바지락을 채취하기 위해 주민들이 겨울이면 철새처럼 온 식구와 가축들을 데리고 몽땅 도리도(경기도 화성군 서신면)로 옮겨갔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고 설 명절이 다가올 무렵에 다시 풍도로 돌아왔다. 이런 독특한 생활방식을 갖고 있는 섬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드문 사례다. 바늘 가는 곳에 실이 가듯 섬 주민을 따라 김정순 목사도 이동했다.
도리도는 풍도에서 동쪽으로 20km 가량 떨어져 있는 무인도 섬이다. 나무가 없는 작은 바위섬이다 보니 집을 짓기가 어려워 임시처소를 만들거나 토굴을 파고 생활했다. 풍도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환경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풍요로운 섬이라는 뜻의 풍도는 행정상의 착오로 한자(단풍나무 풍)를 잘못 표기했다는 말까지 생겼다.
한 방송사가 어민들의 삶을 취재한 것이 방송(1982년)된 뒤로 정부가 도리도에 집을 주어 좀 나은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최근에 화성군에 속하는 어민들과 도리도 소유권을 가지고 법정 싸움을 벌였다가 패소하여 갯벌 채취를 못해 손을 놓고 있다. 그리하여 동네 비탈길에 텃밭 수준으로 밭작물을 심어 생활한다. 실제 100여 명(주민등록상은 130여 명) 미만의 사람이 사는데 이 중 고깃배를 갖고 있는 집은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이고, 6~7 가구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리도'라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려 주민들의 사는 형편은 더욱 말이 아니게 되었다.
숨겨진 야생화가 많다는 입소문을 타고 찾아온 사람들에 의해 섬의 훼손이 심하다. 꽃밭은 길로 변하고 더 넓은 길들이 만들어졌다. 꽃과 산나물이 바닥을 보이고, 꽃 군락지가 개발이란 이름 아래 야영장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예전에는 수석을 캐러 온 사람들에 의해 섬이 파헤쳐졌다. 김 목사의 마음도 편할 리가 없다. 섬은 육지와 떨어져 있어 파도와 함께 무수히 사연사연을 간직하고 있는데 풍도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눈물겨운 편지를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김 목사가 어찌 섬을 떠날 수나 있었을까.
주민들은 포구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고 산다. 30대에서 60대의 장년층은 열댓 명, 대남 초등학교 풍도 분교 아이들 3명, 거의 대다수가 노인층이다. 김 목사가 개척할 당시만 해도 초등학교 학생이 20명 이상, 미취학 아동까지 합하면 한 30명이 있어 목회에 힘을 얻곤 했다. 이제 세월의 크나큰 흐름 앞에 섬은 이렇게 달라졌다. 장년들은 주로 섬과 육지를 왕래하며 두 집 살림을 하여 인구가 늘 유동적이다. 그래서 '교인이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꾼을 키워놓으면 육지로 나가버려 교회에는 일할 사람이 항상 부족하다. 정착을 해야 믿음이 들어가는데 그게 안타깝다. 옆에 일꾼이 있으면 참 좋겠고…….
마을에 작은 해군 기지가 있어서 주일이면 10여 명의 청년들이 교회로 온다. 군대 오기 전에는 교회 안 나갔던 청년이 풍도에 와서 믿음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큰 보람을 느낀다. 노인들만 사는 섬에 이런 청년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감사하다. 그래서 주일이면 2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 드럼도 치고, 교회 안에 은혜가 넘친다.
풍도에는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긍정적으로 복음에 대해 생각을 한다. 주민의 마음이 녹아진 상태, 거둘 영혼이 보인다. 지금 무르익어 영혼의 추수 때가 되었다. 비록 곁에 일꾼이 없어도 이 영혼들을 구원의 문으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자신도 몸을 돌볼 틈도 없이 쉬지 않고 목회에 전념해 온 몸이 아프다. 그러나 복음 전파와 풍도 사랑은 멈출 수 없다. 교회 벽면에 붙어있는 많은 사진들이 김 목사의 발자취와 교회 역사를 더듬어보게 해준다. 셋방에서 시작해 현재의 예배당으로 옮겨와 자리잡기까지 말 못할 무수한 고생을 했다.
우리 산과 들에 피는 야생화는 허리를 굽히고 바라봐야 제대로 보인다. 김 목사는 그렇게 주민들을 위해 허리를 낮추며 섬겨왔다. '사는 게 기적'이라 말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 주민들이 염소 방목을 했는데 우리를 벗어난 염소가 야생에서 살다가 돌아오는 경우를 김 목사는 봤다. 그것처럼 섬 주민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기도한다.
거친 돌 해변에 납작 자갈이 많은 섬, 어쩐지 거친 느낌이 난다. 그러니까 김 목사는 남성 중심의 보수사회, 이러한 섬에서 남자가 겪는 것보다 두 배나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 걸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해안에 널려있는 조약돌이 햇살에 반짝이며 김 목사를 위로하는 것 같다. 오랜 섬 생활에 지금은 시인이 다 되었다. '풍도반석교회'라는 제목의 자작시 안에 섬 풍경과 그녀의 마음이 들어 있다.
출렁이는 황해수 / 사방으로 발판 삼고 / 하늘거울 바라보는 / 반석의 생수등대 /
풍랑에 휘날리는 / 바람꽃 향기 따라 / 파도 타던 갈매기 / 가오가오 날아들고 /
새벽 깨우는 은빛 종탑 / 쉬어 가는 까치 / 깨깨깨! 깨깨깨! / 안개 속 잠든 선부 깨운다.
풍도는 청나라 사람이 탄 배가 포탄을 맞아 앞바다에서 가라앉은 사건(청일전쟁의 서곡)과 미군 함대가 풍도에 정박해 수로를 측량하면서 신미양요의 시작이 된 역사적인 섬이다. 그 역사보다 몇 갑절로 소중한 교회의 역사를 풍도에서 김정순 목사는 주님과 함께 지금도 써 내려가고 있다. 이제 세월은 흘러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으나 여전히 혼자의 몸으로.
- 편집실(한국섬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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