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이(Hatay)지역의 '안타키아'는 인구 약 15만 명이 살고 있는 조용한 도시다. 사도 바울 당시에는 수리아(성경 지명 시리아)안디옥으로 불렸으며 로마,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50만 가량의 사람이 거주했고, 외항 실루기아(Seleucia)가 지중해와 통해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다.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고향을 떠나 각지로 흩어졌다. 이 때 많은 무리가 수리아 안디옥에 정착하여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기록이 사도행전 11장에 나온다.
안디옥교회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교회가 되었다. 또한 세계 선교의 비전을 품고 바울과 바나바를 초대 선교사로 파송한 선교의 출발지였다.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처음 얻었으며, 예루살렘교회가 흉년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구제 헌금을 보내 정성껏 도왔다.
현재 유적으로 남아있는 베드로 동굴교회(지방문화재, 고딕 양식으로 다시 세움)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 몰래 예배를 드렸던 장소다. 시가지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도시 외곽의 가파른 실피우산 산 중턱, 메마른 돌산에 동굴 형태로 자리한 것도 그렇고, 뒷산으로 연결된 좁은 비밀통로가 당시의 긴박성을 말해 준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는 베드로상과 강대상, 돌의자 등이 있다. 그리고 제단 오른쪽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약수가 떨어져 내린다. 바깥 돌산 높은 곳에 돌로 깎아 만들어 놓은 마리아 상이 핍박 속에서도 믿음과 기도의 끈을 더욱 붙잡기 위해 애쓴 성도들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복음의 열정이 동굴교회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선교를 향해 첫 출발을 내딛게 하였다.
지금은 이슬람의 긴장감이 너무나도 팽팽하게 사방을 감싸고 있다. 도시에 우뚝 솟은 수많은 모스크와 무슬림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음악은 언제쯤 십자가를 단 교회와 찬송가로 바뀌게 될까. 그 날을 위하여 기도하게 된다. -한국섬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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