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섬(12)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태평양 상공 위를 날아가면 나타나는 팔라우는 우리나라와 시간이 같다. 직항으로 4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며 몇 년 전 어느 TV에서 '팔라우 미스터 김'이 방영되어 화제가 된 나라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팔라우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일어났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때묻지 않은 그 곳으로 자꾸만 마음이 향했다. 팔라우는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빛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340여 개의 섬무리 중에서 '팔라우 미스터 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김정곤 씨가 사는 섬은 남서부에 자리한 펠렐리우(Peleliu, 또는 페리뤼:Periryu) 섬이다. 그는 여기서 바다와 더불어 살아간다. 융기한 산호 석회암지대라서 대다수의 섬들이 울퉁불퉁하나 펠렐리우 섬만은 편평한 지대를 이룬다. 팔라우의 중심 섬인 코로르 보트항구에서 스피드 보트로 약 1시간이 소요되며 기상이 안 좋을 때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아무래도 팔라우 여행 중에 망원경을 갖고 있다면 보는 눈이 더 즐거워진다. 아시아 진출의 거점이 된 팔라우 팔라우는 오래 전에 독일이 아시아 진출의 거점으로 삼은 나라다. 스페인 사람인 '루이 로페즈 드 빌라로보스'가 1543년에 처음 팔라우를 발견한 이후에는 영국과의 접촉이 이루어졌다. 스페인 선교사들은 팔라우에 들어가 기독교와 알파벳을 전해 주었고, 스페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힘이 약해져 팔라우를 독일에 넘겼다. 독일은 팔라우를 아시아로 나아가는 거점국으로 삼았는데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에게 그만 패하고 말았다. 결국 1919년에 베르사이유 조약을 맺게 되고 아시아 진출의 꿈은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팔라우는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섬에 일본 본토인과 오키나와인, 한국인 등 수 천명의 노동자가 들어왔다. 한인 노동자들은 해군 토목작업과 진지 구축, 수송에 관계된 일, 비료를 만들기 위한 인광(비둘기 배설물) 채굴을 했다. 일본어 방언이 전래되고, 마을 족장은 일본 식민지 통치자들에게 영향력을 다 빼앗겼다. 다시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졌고, 태평양전쟁(1941~1945)을 일으킨 일본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팔라우를 점령하였다. 식민지 건설을 위해 도로를 포장하고, 전기와 상하수도 시설을 놓았으며 상가를 만들었다. 태평양전쟁의 치열한 격전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의 태평양 727함대 사령부가 팔라우에 들어섰고, 섬 곳곳이 급속도로 요새화 되었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이던 당시, 우리의 젊은이들은 강제징용으로 전쟁터에 내몰렸다. 뿐만 아니라 군 위안소로 젊은 여성(군 위안부)들이 끌려갔다. 포를 숨기기 위해 해안 동굴을 만들고, 군 기지와 비행장 활주로, 식량집적, 은거지 축조, 방파제, 다리를 만드는 곳에서 혹독한 중노동에 시달렸다. 해안 동굴에서는 군 위안부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다리를 건설하면서 탄식의 소리를 내뱉었다. 전쟁 막바지에 이러한 일본의 군사시설은 연합군의 공격 목표가 되어 펠렐리우와 앙가우르(Angaur) 섬에서 두 달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아, 평화의 섬을 공포에 떨게 한 그 날의 폭격소리! 현재 오렌지 비치(또는 블러디 비치:Bloody Beach)로 불리는 해변은 미군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던 곳, 그 날의 격한 전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쟁의 참사를 말해 주듯, 일본군 전차, 미군 탱크 등의 잔해, 한국 징용군이 만든 비행장 활주로와 다리가 남아 있다. 전쟁박물관이 된 펠렐리우 옛 수도인 코로르 섬 가까운 곳에 이로(Iro) 난파선이 있고, 침몰선 다이빙으로 이름이 높아 사람들이 찾아든다. 철모, 총탄, 대포탄환, B-29엔진 등 전쟁의 유물이 가득하다. 그러나 전쟁의 흔적은 격전지였던 펠렐리우 섬에 훨씬 많다. '얼마나 치열했으면 현재 팔라우 인구와 비슷한 2만 여 명의 사상자를 냈을까', 당시의 급박한 상황이 머리에 그려진다. 섬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때의 생존자, 전쟁의 아픔을 몸소 체험한 자들이다. 바다는 피로 물들고, 땅과 숲은 불에 파괴되었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다시 맑은 바다, 초록빛 숲이 우거진 밀림으로 되살아났다. 현재 전쟁의 잔해는 자연에 동화되어 평화롭게 물고기가 드나든다. 우리 선조의 흔적, 아이고 다리야! 현지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아이고 다리'라 부르는 '미윤스 코스웨이'라는 제방다리가 우리 민족이 당한 수난을 말해 주고 있다. 코로르의 섬과 섬을 연결하는 길이 1㎞ 가량의 시멘트 도로가 '아이고 다리'다. 이 다리를 건설하면서 저절로 내뱉은 말이 "아이고~ 다리야"라는 탄식의 말이었다니 가슴이 아프다. 더운 날씨 속에서 굶주림과 강제노동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러한 신음소리가 나왔을지 짐작이 간다. 석회질이 많아 오히려 길 내는 것이 쉬울 수도 있었으나 이미 육체의 한계를 넘은 중노동 상태였다. 어떤 한국인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이 다리가 보이는 바벨투아프 섬에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우리 선조가 당한 서러움과 흘린 피가 간직된 다리, 비행기 활주로와 정신대 동굴박물관 등을 후손인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마음이 착잡하다. 두고 온 고향이 그리워 불렀던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노래가 원주민에게 오늘날까지 구전되어 내려온다. 섬 어디에선가 붉게 핀 봉숭아(봉선화)를 보게 된다면 그것은 고향에서 씨앗을 가져와 심어 팔라우에서 피어나는 우리나라 봉숭아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가 머나먼 이국(異國), 태평양 섬나라에 간직되어 있다. 바다 속 물밑 세상은 천국 태평양에 떠있는 작은 펠렐리우 섬의 바다 풍경이 거울 속을 보는 것처럼 다 보인다. 맑은 바다는 사람을 청허(淸虛)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눈부신 백사장, 20여 곳의 다이빙 포인트, 수중경치와 전쟁 유물까지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강렬한 태양 빛과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바다, 그 바다 밑이 전쟁의 슬픔을 잊고 속살을 드러내 놀랍다. 갖가지 빛깔로 군락을 이룬 산호들, 스내퍼, 가시복, 곰치와 청소 놀래기가 한가하게 헤엄치고, 만타 가오리가 왔다갔다 노닌다. 물고기와 바다 생물들은 자신이 드나드는 저 동굴의 검은 구멍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고통스런 지옥의 현장이었음을 모르는 듯 평화로운 모습이다. 정말 저 바다는 우리 한국인 노동자와 위안부들의 슬픈 탄식소리를 못 듣고 있는 것일까. 천연 동굴 수영장에서 노는 아이들 섬에는 군데군데 지하 동굴이 자리한다. 윗부분이 지상에 노출되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가 보면 그리 깊지 않고 생각보다 훨씬 넓다. 이만한 수영장이 어디 있을까 싶다. 물맛은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있어 식염수를 먹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어우러져 추억을 같이 만들고, 그 안에서 친구들과 나름대로 즐겁게 노는 법을 터득했다. 다이빙도 하고, 기차놀이도 하면서 아이들은 건강하게 커간다. 팔라우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와 순수한 동심, 이들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멀리 동굴 수영장 밖으로 울려 퍼진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깥다!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곳, 나의 로망은 팔라우! 이렇게 생각만 해서는 팔라우를 경험하기 힘들다. 그래서 팔라우의 미스터 김은 말한다. "팔라우의 바다는 직접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고. 그렇기에 그는 팔라우에 온 사람들에게 더 많이 보고 가기를 늘 마음으로 바란다. 팔라우에 있는 동안 흘러가는 시간이 참 안타깝다. 하지만 이 곳에 살지 않는 한 계속 여기에 머물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선조의 가슴 아픈 숨소리를 마음에 담아 삶의 자리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나라에 대한 로망은 팔라우에 도착한 순간에 이루어진다. 그 아름다움 풍경에 숨이 막히고, 순수한 사람의 마음에 이끌리게 된다. 어느 책에서는 '많은 물고기의 음력 산란주기를 팔라우 섬의 언어가 현대 과학 문헌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다'라고 적고 있다. 이들은 바다를 자기 집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 어찌 보면 문명에 앞선다는 우리가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자료 사진) 1.EBS 방송 -한국섬선교회 편집실 ▼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