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명에 대한 강한 집착과 소유의식을 갖고 살기 마련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예외가 있는데 이 생명에 대한 소유의식을 거의 느껴보지 못하고 산다는 사실이다. 비록 '내 목숨'이지만 '내 것'이라는 철저한 소유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뭐라고 할까. 생명을 덤으로 받았다는 일종의 부록의식(附錄意識)이라고나 해야 할지. 따라서 하나님께 맡긴 생명인 것이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신앙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목숨을 잃을 숱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겨왔었던 것이다. 그 위기를 누가 극복하게 하여 주었던가. 그리하여 살아났을 때 이 생명이 '내 것'일 수 있는가. 고인이 되신 필자의 부모님       생명을 잃을만한 첫 번째 위기는 세상에 태어난 지 1개월도 못된 갓난아기 시절이었다. 치명적인 백일해(百日咳)에 걸린 것이다. 요즘도 낙도지방에서는 병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리던가, 아니면 자연치유 되기를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인 형편이다. 그런데 90년 전의 일제 강점기였으니까 그 형편이 어떨지 짐작이 갈 일이다. 온몸을 경련하며 기침을 해대는 백일해는 참으로 고약한 전염병이었다. 걸렸다 하면 1백일 동안 앓게 되고 대개는 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발전하여 아기의 생명을 빼앗아 가버린다. 지금은 예방백신이 개발되어 주사 한방으로 해결되지만 그 당시에는 치사율이 매우 놓은 위험한 병이었다. 어머님은 백일해에 걸린 아기를 살려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외로운 섬지방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흑산·목포간 여객선이 보름만에 한 번씩 다니던 때였으므로 병원에 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머님은 내일이면 목포에서 여객선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 밤으로 아기는 죽을 것 같았다며 회고했었다. 내일 새벽이면 아기를 땅에 묻으리라 하고 보데기에 싸서 방 윗목에 버려 두었다. 40이 지나 얻은 아들, 그 아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자식의 죽음은 가슴에 묻고 부모의 죽음은 청산에 묻는다'고 했던가? 그런데 울며 기도하다가 잠에 들었던 새벽, 그 새벽을 아기의 울음소리가 밝혀 주었다. 놀라서 보데기를 열어보니 아기는 죽지 않고 다시 살아 기침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어머님은 목포로 나와 미국남장로회 선교부에서 세운 부란취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아기가 너무 어려서 약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기의 약을 어머님이 잡수셨다고 한다. 젖을 먹게 되면 약효가 아기에게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앞둔 아기를 안고 서원(誓願)기도를 하셨다는 어머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꽉 차오르곤 한다. - 박요한(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