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 계곡면(溪谷面)은 해남군의 동북부에 자리잡은 면으로 면소재지는 성진리에 있다. 이 성진리에 있는 성진 보통학교를 다녔다. 북쪽으로 높이 6백m에 이르는 흑석산이란 험준한 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높이 3백m에서 1백m에 이르는 구릉이 산재해 있다. 따라서 계곡면 전체는 분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중앙부는 기름진 평야가 질펀하게 전개되어 있다. 그 중앙부 가운데를 남서방향으로 계곡천이 흐르고 있다. 풍광이 명미한 아름다운 고장이다.
얼마 전 이곳을 통과할 기회가 생겨 실로 60여 년 만에 계곡면을 상면하게 되었다.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내려 쪼이는 마을마다 그리운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그 옛날의 골목과 마을 처마 끝에는 세월의 자취가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아버님은 이 무렵에 흑산도를 떠나 도초도(都草島)로 옮겨 신교리(新郊里)라는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20여 년 간을 살게 되었으므로 교역생활의 대부분을 도초에서 보낸 셈이 되었다. 신교교회에서 시무하면서 수다교회, 지남교회 등을 개척했고, 성덕학원(成德學院)을 세워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었다.
당시 성덕학원 교장은 함경도 출신의 이성국(李成國)이란 분이었는데 당시 대단한 명필(名筆)로 이름을 날렸다. 아버님은 또 일종의 농촌계몽단체를 조직했는데 그것이 바로 농촌진흥회(農村振興會)란 것이었다. 농촌이 진흥되고 농민이 잘 살아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이상을 실천해 보고자 함이었다. 미신타파를 비롯하여 신생활 운동을 실시하였다. 요즘으로 치자면 일종의 새마을운동을 전개한 것이었다.
이렇게 복음사역과 교육사업 및 농촌진흥운동 등 세 가지 방향에서 도초도의 선진화 운동을 한 아버님이었지만 기실 실생활은 비참한 수준의 극빈 속에서 보내야 되었다. 보릿고개라고 하는 3, 4월의 춘궁기가 되면 집집마다 절량(絶糧)이 되기 일쑤였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멀건 보릿가루를 쑤어 하루 두 끼를 때우곤 하던 기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은 책을 사 모으는 일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 형제들에게 읽히기 위해 책들을 사 모았는데 지금도 기억에 나는 것은 평양신학교에서 발간했던 '신학지남(神學指南)'지를 비롯하여 '금전은 인격의 시험품', '백목강연(百牧講演)', '예수 행적', '사복음대됴기술', '신약주석 한질'(이 주석은 현재 총신대학 도서관에 기증되어 있다) 등이었다.
- 박요한(한국섬선교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