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읍교회 조사(助事)로 시무하면서 당회장 허화준 목사로부터 받은 신앙적 감화는 선교사 타마자 목사의 영향에 못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허 목사의 생활은 ‘철저한 경건생활’로 요약해서 설명될 수 있다. 청교도적(淸敎徒的) 경건생활의 전통을 고수하였는데 그 경건생활의 두 가지 핵심은 ①주일성수(主日聖守)와 ②십일조 생활이었다. 요즈음 주일을 온전하게 거룩히 지키려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 세속주의와 TV를 중심 한 매스미디어의 공세로 현저히 약화되고, 또한 공리주의적(功利主義的) 사고방식에 의해 오직 물질적 축복만을 겨냥하는 십일조 생활의 타락한 현장을 보며 우리 신앙 선배들이 그리워지는 것이 솔직한 감회이기도 하다. 허 목사는 교회에서 광덕학교(光德學校)를 세워 배우지 못하는 소년들을 모아 신앙과 일반 교과목을 병행하여 초등교육을 실시했다. 목회와 생활과 교육에 있어서 허 목사는 가장 이상적인 삼박자 리듬을 갖추었고, 그의 이 같은 이상(理想)은 젊은 교역자인 나에게 하나의 실체로서 비추어 졌으며 목회 일생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쳤음을 특별히 고백해 둔다. 그런 점에서 사모하는 선배를 두었던 나는 행복한 후배였다. 농한기가 되면 농촌 교회는 바쁜 시절이 돌아온다. 이를테면 농한기가 교회로선 농번기가 되는 셈이다. 농번기에는 전도할 수가 없다. 10월말 경 추수가 끝나면 그 때부터 농한기가 되므로 나는 트럼펫을 들고 나가 멋지게 찬송가를 연주하여 사람들을 모은 뒤 전도강연을 하는 것이다. 보통 한 부락에서 3일 밤씩 계속 전도강연을 했고, 때로는 환등기를 가지고 다니며 보여 주었다. 전도강연의 내용은 하나님의 존재와 죄의 회개, 그리고 구원과 심판이었다. 어느 때인가는 좀 늦은 봄이었다. 그 날도 전도강연을 나갔다가 돌아와서 세수를 하고 발을 씻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수 대야에 코피가 쏟아져 온통 대야에 물이 새빨갛게 변했다. 나팔을 분다는 것이 대단히 고된 일이고, 거기다가 전도강연까지 겸하여 계속하고 보니 코피가 터진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피곤을 모르고 농한기만 되면 부락을 순회하면서 전도강연을 했던 20대 중반의 짧은 조사 시절은 그리운 정열의 시간인 동시에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과거지사였다. 때는 점점 일제 말기로 접어들고 있다. 그 악명 높은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신사참배(神社參拜) 소동의 오욕에 가득 찬 암흑기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암흑의 시대에 혹자들은 변절했고, 혹자들은 망명했으며 또 지조 높은 이들은 정면으로 맞서 죽음의 칼날 위에 피를 뿌렸다. 자부심과 수치심이 교차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펼쳐보자. - 박요한(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