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에 방문하여 보았던 필자가 출생했던 흑산도의 집터      식량이란 콩깻묵, 그것도 배급으로 겨우 탈 수 있었다. 일제 말기의 심각한 식량난은 전쟁을 위해 모든 식량을 군량미로 공출(供出) 당했기 때문이었다. 탄피를 만들기 위해 갖가지 놋그릇을 빼앗아 가고, 교회의 종을 바치라고 강요했으며 군용 비행기를 띄울 연료를 공급한답시고 소나무 관솔을 거두어가기까지 했다. 전쟁물자를 위해 온갖 착취를 일삼았으므로 국민들의 사는 형편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사택에 식량이 떨어져 버렸다. 아내는 당시 교회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었던 까닭에 식량이 떨어졌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날이 공교롭게 토요일이었고, 때는 봄이었다. 아내는 들에 나가 부드럽고 연한 독새풀(이른봄이면 논바닥에 돋아난다)을 남이 모르게 뜯어다가 가늘게 썰었다. 그것을 한줌 남은 콩깻묵과 쌀 한 접시쯤 남은 것을 섞어 죽을 쑤었다. 어린 아기에게 먹이고자 함이었다. 우리는 내내 굶은 채 아이만 먹였고, 나는 주일 낮과 밤예배를 인도해야 했었다. 당시 벌교읍교회에는 유명한 이기풍(李基豊) 목사님의 장남인 이사은(李賜恩) 집사가 있었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보통 1년에 한 번씩 발작을 하면 괴력(怪力)을 발휘하기 때문에 누구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때는 부인 집사님이 수족에 쇠고랑을 채우게 된다. 나는 무시로 드나들며 기도를 했다. 약 1개월이 지나면서 이 집사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교회에 봉사하게 되었다. 이 집사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 대판고공(大阪高工) 출신으로 실력 있는 인재인데 애석함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그 후 교역을 하려면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김 목사님이 옥중에 있지만 제직들의 동의를 얻어 조선신학원(朝鮮神學院)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미 평양신학교는 1937년에 폐교되었으므로 서울의 조선신학원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신학원은 서울 인사동의 승동교회(勝洞敎會) 아래층에서 개교했으며 나는 예과(豫科)에 적을 두었다. 김대현 장로의 헌금에 힘입어 설립된 유일한 장로교신학인 조선신학은 송창근, 김재준, 유인구 목사 등이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교장은 장공(長空) 김재준(金在俊) 박사였다. 뒷날 우리 교단의 분열의 씨앗은 이미 이때부터 잉태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학기말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시간이 되어 시험을 치르는데 한참동안 나는 답안지를 메워 나가다가 수상쩍은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놀랍게도 공공연히 몇 사람이 커닝을 하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목회의 사명을 안고 장차 한국교회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신학생들이 공공연하게 부정을 저지르는 광경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지금은 그때의 신학생들 중에는 교계의 원로가 된 분들도 있을 것이다. - 박요한(한국섬선교회 ▼) 필자가 살았던 집은 없어졌고 그 윗집은 아직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