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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록] 찍어버린 당산나무
  글쓴이 : 박요한     날짜 : 2008-03-06 09:38     조회 : 12901    





길 복판에 두렵고 존엄하신 당산나무가 넘어져 있으니 동민들은 난감한 일이었다. 잎사귀조차 함부로 만지면 재앙을 받는다고 두려워하며 감히 나무를 치울 엄두를 못 냈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넘어진 당산나무를 피해서 길옆의 밭을 지나 통행했다.

아버님은 이것이 바로 좋은 기회구나 싶었다. 아무도 무서워서 나뭇가지 하나 건드리지 못할 때 본때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아버님은 동민회(洞民會)를 열게 했다. 회의가 열리자 넘어진 당산나무를 안건으로 하여 토의하게 했다. 나무를 치워야 통행에 불편이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 나무를 함부로 만졌다가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당신이 나무를 치워서 쪼개어 땔감으로 쓰겠으니 이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농민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당산나무를 손댔다가 벌을 받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또 더러는 예수 믿는 친구가 당산나무 귀신에게 혼나는 꼴을 보자며 기대에 찬 표정을 하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 아버님은 톱과 도끼를 마련하여 동구 밖으로 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멀 찌기서 그들이 섬기던 당산나무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었다. 잔가지부터 톱질하고 도끼로 찍어 나갔다. 아버님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그 거대한 당산나무를 하루 동안에 잘라서 모두 집으로 옮겨 버렸다. 동네 길은 다시 개통되었고, 우리 가족은 아무런 화를 입지 않고 건재했다. 우리 집 아궁이에서 당산나무는 불에 타서 없어져갔다.

이 당산나무 사건은 마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예수 믿는 사람은 과연 다르다'든가 '귀신보다 예수가 더 세다'는 식으로 비쳐졌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즉각적으로 전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강퍅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봄비와 같은 역할을 했었음에 분명했다.

그 당시에는 흑산에 고래를 잡는 포경회사(捕鯨會社)가 있었다. 이 포경회사에는 여러 척의 포경선이 있었는데 선장의 대부분은 미국인이었다. 그 선장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상륙을 하게 되면 반드시 교회를 찾아 기도하고, 다음 우리 집에 다녀갔다.

그는 올 때마다 반드시 상당한 분량의 고래고기와 당시로선 귀한 알사탕을 가지고 와서 우리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나 부드럽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코 큰 미국인 선장이 주는 알사탕의 매혹적인 맛은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포경선이 들어오기를 기다렸고, 그 선장을 퍽 좋아했다.
- 박요한(한국섬선교회 ▼)

필자가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흑산도 진리 마을과(위)
진리해수욕장(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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