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이야기(78)
	들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솔잎을 만나고 가는 별빛처럼 고요하게 아주 고요하게 아기 예수 만나러 오세요. 아기 예수 만나러 오세요. 목자들을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신나게 아주 신나게 박사들을 만나고 가는 별빛처럼 기쁘게 아주 기쁘게 아기 예수 만나러 오세요. 아기 예수 만나러 오세요. 해수욕장을 건너는 바람처럼 설레임으로 바다를 만나러 오는 별빛처럼 그리움으로 아기 예수 만나러 오세요. 아기 예수 만나러 오세요. 어부들을 만나러 오는 바람처럼 아이들을 만나러 오는 별빛처럼 아기 예수 만나러 오세요. 아기 예수 만나러 오세요.
	요한이네가 육지로 이사를 가고 선유도 초등학교에, 선유도아이들은 없고 장자도아이들 둘이 선유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2학년 도원이와 아현이가 조그만 자전거를 타고 장자도에서 매일 선유도로 학교에 옵니다. 도원이와 아현이는 학교에서도, 장자도 동네에서도 그리고 학교에 오는 길에서도 찰떡 짝꿍입니다. 아현이가 중학생인 오빠를 기다리느라 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놀고 있으면 도원이도 저만치 갔다가 다시 돌아와 아현이와 놀아줍니다. 아현이 오빠 충만이를 같이 기다려줍니다.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갑니다. 키도 엇비슷한 도원이와 아현이는 친형제보다도 더 가깝습니다. 도원이와 아현이가 싸우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도원이와 아현이는 운동회 때만 서로 다른 편입니다.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서 제일 먼저 달리기 시작을 합니다.
	이제 바람소리에도 키가 자라는 선유도아이는 없습니다. 성탄 축하 발표회를 할 아이들도 물론 없습니다. 선유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아이가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선유도가 슬퍼 보입니다. 선유도가 쓸쓸해 보입니다. 아이들은 없어도 방학과 성탄절이 들어 있는 12월은 다가옵니다. 11월과 12월을 아이들과 성탄 준비로 난리법석을 떨면서 지내던 날들이 그립습니다. 아이들과 먹던 군고구마의 달콤함과 난롯가의 그 소란함이 그립습니다. 12월이 다가오니 성탄 축하예배를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걱정입니다. 그래도 선유도교회에서 가장 젊은 댁들로 구성된 성가대를 중심으로 뭔가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찬양 연습을 합니다. 찬양은 늘 하던 거라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성시낭독도 합니다. 성시낭독은 임미라 집사님이 맡았습니다. 중창도 한 곡 준비합니다. 성경본문으로 이야기 극도 만들어 봅니다. 세계 각국 언어로 성탄 인사도 연습합니다. 권사님들을 중심으로 장구 반주에 맞춘 춤과 국악 찬양도 준비합니다. 성탄 장식을 하려고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러 갔다가 그 옆에 있던 아이들이 쓰던 악기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큰북, 장구, 트라이앵글, 케스터네츠, 오카리나, 멜로디언, 리코더, 탬버린, 카바사, 심벌즈.... 리듬악기 연주 한 번 해볼까? 할 수 있을까? 한 번도 악기를 만져 본 적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할 수 있을까? 계이름을 읽을 줄 아는 분에게는 멜로디언과 리코더를. 중학생 소현이와 범준이에게는 오카리나를. 그리고 목사님에게는 플릇을. 트라이앵글 두 명, 케스터네츠 두 명, 탬버린 두 명. 큰북, 카바사, 심벌즈는 각 한 명씩 악기를 배정하고 연습을 시작합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실래요. 대부분 한 번도 악기를 만져보지 않은 분들이 리듬에 맞춰 두드리고 흔들어야 하는데. 가장 쉬운 케스터네츠 잡는 법부터 가르쳐 주고 그담, 탬버린 흔드는 법 가르쳐 주고 다른 악기와 엇박자로 쳐 주어야 할 트라이앵글 가르쳐 주고 큰 북 쳐 주고 마지막으로 심벌즈 울려 주고 발로는 큰 북에게 싸인 보내고 두 손은 탬버린과 심벌즈에게 싸인 보내고 입으로는 트라이앵글 소리 내고 카바사는 우선 맘대로 하라고 하고... 목사님은 피아노 쳤다가 플릇 불었다가 하시고.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 나도 정신없어서 헷갈리고. 탬버린 잡은 손에 힘은 잔뜩 들어가 있고 어른들도 엄청 시끄럽습니다. 에구구!!!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요? 성탄절은 바득바득 다가오는데 갈 길은 멀고. 박자를 놓쳐서 웃고. 엇박자로 쳐서 웃고, 한 박자 쉬고 맞춘다고 맞췄는데 또 엇박자여서 깔깔깔. 틀린 옆 사람 따라 해서 같이 틀리고도 틀린 줄도 모르고 있어서 또 웃고. 가장 결정적일 때 울려 주어야 할 심벌즈가 멍 때리고 있어서 또 웃고.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 발로 완전 쇼하는 내 모습 보고 배꼽 잡고 데굴데굴. 어쩌다 한 번 울려주는 심벌즈가 쉬워보였는지 남자 성가대원들이 권 집사님에게 그것도 제 때 못 치느냐고 핀잔을 주더니, 한 번씩 해 본다고들 하셔서 그러라고 했더니. 모두, 죄다 박자 못 맞추기는 한가지라서 또 한 바탕 웃고. 보다 못한 권 집사님의 아들 범준이가(3년 전인 6학년 때 범준이가 심벌즈 연주자였음) ‘아빠 이리 내봐 이렇게 하는 거야’ 하더니 갸도 박자 놓쳐서, 깔깔깔... 참 많이 웃었습니다. 처음엔 아수라장이더니 날이 갈수록 점점 좋아집니다. 쿵짝 쿵짝 찰찰찰... 큰 북이 중심을 잘 잡아주니 트라이앵글도 사이사이로 맑은 소리를 내고 카바사도 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문제의 심벌즈도 가끔 빼먹어 가면서 박자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눈물이 날 만큼 많이 웃었습니다. 배가 고플 정도로 정말 열심히들 했습니다. 우리 왕 나셨네! 주 나셨네! 영광 할렐루야!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쁘게 축하 발표회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은 우리가 더 즐거웠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더 행복했습니다. 우리가 더 신났었습니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세상에 어떤 것도 비길 수 없네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장구가락은 신이 나는데 고요히 눈을 내리깔고 온 맘 다해 춤을 추는 이관례 권사님의 춤사위가 왜 슬퍼보였을까요? 성탄 축하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열나흘 환한 달이 눈 덮힌 선유도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달빛에 반짝이는 하얀 눈이 보석 같습니다. 땅 위에 내려온 별 같습니다. 아름답고 고요한 밤 아기 예수 나신 밤. - 류순화(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