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이야기(93)
	오늘 아침 드디어 그들이 떠났습니다. 갑자기 아침이 너무 조용합니다. 채 날이 밝기도 전에 주방에 들어오면 새들의 재재거림으로 주방이 소란스러웠는데 오늘 아침 너무 조용한 주방에 들어서니 무언가 허전합니다. 산마다 진달래가 꽃불로 타오르던 사월 초입이었나 봅니다. 작고 까만 새 한 마리가 가스렌지 환기통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쩌다 길을 잃어 잘못 가스렌지 환기통으로 날아들었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보니 그 새가 입에 무언가를 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아, 아마도 환기통에 알을 낳은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새가 날아들면 긴 막대기로 환기통을 건드려서 새를 쫓아내곤 하다가 그곳에 알을 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두었습니다. 두 마리인지 한 마리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어찌나 부지런히 드나드는지... 가스 불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끓이는 일이 있을 때는 주방의 창문을 다 열어서 가능하면 환기통으로 뜨거운 불기운이 덜 나가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쯤 지난 어느 날 S자 곡선으로 휘어진 환기통 아랫부분에서 아기 새의 재재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어미 새는 더 바빠지기 시작했지요. 날이 밝기가 무섭게 어미 새는 밖으로 나가 먹이를 물어오고 어미 새가 들어올 때마다 환기통이 흔들거릴 정도로 아기 새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아기 새들의 재재거림이 들려옵니다. 아기 새가 몇 마리 부화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미 새는 하루 종일 들락거리며 아기들을 먹입니다. 한꺼번에 다 먹일 수는 없을 텐데, 방금 전에 먹인 놈과 아직 먹이지 못한 놈을 어미 새는 어떻게 구별할까요? 아기 새들은 어미 새가 들어올 때마다 입을 벌리고 서로 먹여달라고 아우성을 칠 텐데 말입니다. 방금 전에 먹었건 아직 먹지 못했건 한 번이라도 더 먹으려고 입을 벌릴 텐데 말입니다. 어미 새가 둥지를 들고 날 때마다 환기통 안은 재재거림과 들썩임으로 소란스럽습니다. 어미 새가 환기통을 빠져 나가도 소란스러움은 한동안 계속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 새들의 재재거림이 더 커집니다. 처음에는 움직임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늘게 ‘찌찌찌’했는데 요즘은 제법 ‘째째째’ 합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갑자기 아기 새들의 재재거림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새벽에 교회에 갔다 왔는데 그새 모두들 떠나고 없습니다. 분명 어제 저녁때까지 아기 새들의 재재거림을 들었습니다. 아기 새들과 어미 새는 분명히 어젯밤까지 환기통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Enter키와 Backspace키를 번갈아 두들기다가 무언가 간식거리를 가지러 주방에 갔을 때만해도 아기 새들의 기척을 들을 수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오늘 아침 둥지를 비우고 그들이 떠나고 없습니다. 조용한 주방에 적응이 잘 안 됩니다. 거의 달포를 아기 새들의 재재거림을 들으며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곤 했는데 말입니다.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먹이를 공급하는 어미 새의 부지런함에 감탄하곤 했는데 말입니다. 밤중에도 가끔 물을 가지러 주방에 들어가면 사람의 기척에 아기 새들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말입니다. 그들이 떠나고 없는 조용한 주방이 허전합니다. 어느 새 아기 새들의 날개가 어미를 따라 날 만큼 튼튼해진 모양입니다. 아기 새들도 자기들의 날개로 날아 둥지를 떠났겠지요. 아기 새들이 어미 새를 따라 하늘을 나는 걸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날개가 약해 아직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가까운 숲에 깃들이지 않았을까 하고 낮에 가까운 대나무 숲을 살펴보았습니다. 혹시 어디서 아기 새들의 재재거림이 들려오지 않을까 귀 기울여 보았습니다.
	지난 어버이 주일엔 육지에 나가 사는 선유도아이들이 고향 교회로 예배드리러 왔었습니다. 이제 막 결혼한 새신랑, 새신부가 있고, 벌써 중학생 학부모가 된 선유도아이들도 있습니다. 고등학생도 있고, 대학생도 있습니다. 이제 갓 직장에 들어간 사회 초년생도 있고, 연륜이 느껴지는 중견사원도 있습니다. 대여섯 살 꼬맹이 적부터 보던 아이들도 있고, 얼굴빛이 하얗던 고3 수험생이던 시절에 보던 아이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기억에 남는 아이들은 교회학교에 오던 대여섯 살 유치부 아이 때부터 중학교를 마치고 나간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주일학교와 학생부를 거치고 육지로 나간 아이들입니다. 새벽마다 내 눈물을 먹고 자란 아이들입니다. 새벽마다 내 기도를 먹고 자란 아이들입니다. 부모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이사 간 선유도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들 부모처럼 나도 그 아이들을 내 가슴에 묻었습니다. 노란 수선화가 피는 계절이 오면 생각이 납니다. 산수유나무 아래에 가면 생각이 납니다. 장마가 시작되면 생각이 납니다. 그 아이가 떠난 계절에 피었던 노란 수선화는 올해도 피었습니다. 그 아이의 납골을 묻은 산수유나무 아래는 올해도 붉은 꽃 잔디가 피었습니다. 그리고 노랗게 산수유 꽃도 피었습니다. 그 아이의 장례를 치르러 가던 날처럼 매년 그 아이의 기일에는 폭우가 쏟아집니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선유도아이들은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바닷바람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몇 군데 쯤 마른버짐이 피던 아이들이 거친 소년으로, 혹은 초경을 치르며 소녀로 자라 둥지를 떠났습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떠난 빈 둥지가 허전하고 조용하게 있습니다. 가끔 아이들이 떠나고 없는 빈 방의 문을 슬쩍 열어 보면 그 방의 주인이 붙여 놓은 ‘아이돌 사진’ 혹은 ‘명언’ 또는 ‘낙서’ 들이 방을 지키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아 슬몃 웃음이 납니다. 고등학교에 잘 적응하는 아이들도 있고 전학과 자퇴를 번갈아 하며 힘들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부모가 충분하게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했어도 바르게 자라 부모의 기쁨이 된 아이들이 있고 넘치는 경제적 뒷받침을 받았지만 부모의 속을 까맣게 태운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육지로 떠나는 2월의 끝 무렵이면 몸져눕습니다. 몸살과 열병으로 한 사나흘을 죽게 앓고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젠 2월이 되어도 그렇게 떠나보낼 아이들이 없습니다. 쿡쿡 쑤셔오던 몸살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랬는데 이제 다시 선유도아이들이 고향을 찾고 있습니다. 특별한 날, 명절에, 그리고 때론 재충전을 위해 가정을 이룬 아이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데리고 섬을 다녀갑니다. 우리가 섬에 오래 살긴 산 모양입니다. 선유도아이들의 그 아들, 딸들을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 선유도는 아카시아 흐뭇한 향내가 가득합니다. 내 생일 언저리에서 피던 아카시아가 올해는 이르게 피었습니다. 主.內.平.安 - 류순화(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