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이야기(94)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길갈에 있는 선지학교를 방문한 엘리사는 제자들이 매우 궁핍해서 어렵게 지내는 것을 봅니다. 엘리사는 그들을 먹이려고 사환에게 국을 끓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들로 산으로 다니며 먹을 만한 것들을 뜯어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들에서 따 온 들호박을 국솥에 넣었는데, 독성이 강한 야채였던 모양입니다. 국을 끓여 사람들에게 퍼다 주었는데, 국을 먹던 사람들이 국에 독이 퍼져 있음을 알고 소리칩니다. 엘리사는 가루를 국솥에 던지고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합니다. 선지자의 말이 끝나자 솥 안에 있던 독이 사라집니다. 국솥 안에 퍼져있던 독이 없어졌습니다. 바알 살리사에서 온 어떤 사람이 처음 추수한 곡식으로 만든 스무 개의 보리떡과 한 자루의 채소를 선지학교로 가져왔습니다. 성인 한 사람의 한 끼 식사량을 보리떡 한 개라고 가정할 때, 그것으로 백 명을 배불리 먹이는 일은 불가능해보입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턱없이 부족합니다. 알면서도 선지자는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합니다. 야훼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주었더니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습니다. 야훼는 당신의 백성을 먹이십니다. 풍성하게 먹이십니다. 먹고 남을 만큼 주십니다. 제자들이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습니다.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중략 . . .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그렇게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은 그 길을 스물여덟 해를 걸었습니다. 스물여덟 해를 걷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바람 부는 언덕에서 마음이 물처럼 흔들린 적도 많았고 폭풍우가 거센 어두운 밤엔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산말랭이를 넘느라 고단하고 팍팍한 길을 가다가, 넘어지고 깨져 걸어갈 여력이 없을 때 숲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옹달샘 물을 달게 마시고 다시 힘을 얻곤 했습니다. 안개비가 우우 몰려다니는 날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몰라 당황했고 바람 불어와 바람이 안개를 지우면 그제서야 고운 노을 속으로 떨어지는 해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노랠부릅니다. 육지로의 모든 길이 막힌 큰바람 부는 밤엔, 홀로 인 것처럼 아프게 울다가 하늘 한 쪽이 열리면 눈물에 젖은 눈으로 수신호를 보냅니다.
	지난주엔 타일랜드 코랏에서 손님 스물네 분이 오셨었습니다. 올 해로 다섯 번째 맞이하는 손님입니다. 코랏에 있는 목회자 훈련원에서 훈련 받으시는 목사님과 사모님들입니다. 2년 과정으로 목회자 영성 훈련을 받으시는 분들인데 수료를 앞두고 한국 교회 탐방을 오셨습니다. 한국 교회의 부흥의 비결을 배우고, 새벽기도회의 열정을 배우고. 또 선유도처럼 막힌 곳에 있는 교회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있는지 보고 배우러 오셨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우리교회보다 더 큰 교회를 목회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많이 배운 목사님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다녀본 한국 교회 중에서 선유도 교회가 제일 작은 교회랍니다. 그런데 그 ‘작은 섬 교회’가 그분들에게는 위로가 된답니다. ‘섬 교회도 선교를 하는구나!’ ‘그렇다면 우리도 할 수 있지’ 그렇게 위로를 받고 도전을 받는답니다. 우리교회가 작은 교회여서 그분들에게 도전이 된답니다. 우리교회가 섬 교회여서 도시에서 목회하는 분들에게 도전이 된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은 노인 성도들이어서 그분들에게 위로가 된답니다.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 도전이 된답니다.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사역을 하는 것이 도전이 된다고 합니다. 연약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도전이 된다고 합니다.
	아카시아 꽃잎이 누렇게 말라가면서 울타리 장미가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작년에 이채운 집사님 댁에서 옮겨온 흑장미도 꽃 봉우리를 맺었습니다. 흑장미가 꽃잎을 열면 고혹적인 장미향이 사방으로 번집니다. 어둠이 묽은 새벽녘이면 장미향은 더 멀리 갑니다. 들여다보면 간밤에 내린 이슬방울이 꽃잎 사이에 보석처럼 박혀있습니다. 주황과 빨강이 반반씩 섞여 화려하던 개양귀비 꽃도 지고 있습니다. 이른 봄부터 돌투성이 비탈진 언덕에서 화려하게 피어나더니 이제 꽃이 지고 있습니다. 개양귀비 꽃은 해가 뜨면 꽃잎을 열었다가 해질녘이 되면 꽃잎을 오므려 꽃술을 숨깁니다. 꽃이 진 자리에 길쭉한 씨방이 푸르게 매달렸습니다. 호기심에 노랗게 익어가는 씨방 하나를 따서 껍질을 벗겨 보니 채송화 씨만 한 까만 씨앗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씨앗만큼 내년 봄에는 개양귀비 꽃이 피겠지요. 개양귀비 꽃이 지고 사철 채송화가 반짝이는 연분홍 꽃잎을 펼쳤습니다. 땅바닥을 기며 푸르고 푸른 줄기를 뻗고 그 줄기마다 연분홍 꽃잎을 펼쳐들고 있습니다. 사철 채송화는 늦은 가을까지 꽃을 피우고 푸른 줄기로 버티다가 겨울 눈 속에 빠알갛게 얼었다가 봄이 오기 무섭게 푸르게 일어섭니다. 임미라 집사님이 심어주신 블루베리도 꽃이 진 자리에 완두콩 만 한 초록색 베리가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올 봄은 가물어서 텃밭의 야채들이 빳빳합니다. 그나마 겨자채와 아욱은 다 자라지도 않고 꽃부터 피웠습니다. 봄날은 짧은데 비는 아니 오고 종족보존에 위기를 느낀 모양입니다. 봄날이 가고 있습니다. 봄이 가면서 청청한 여름을 데리고 왔습니다. - 류순화(한국섬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