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이야기(81)
	섬진 강변에 산수유와 매화가 피기 시작합니다. 바람 끝은 아직 차가운데 빈 가지마다 노란 산수유 꽃이 방울방울 달렸습니다. 어릴 적 고향 마을 어귀에 있던 아름드리 산수유나무가 생각납니다. 강 건너 마을의 매화는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길가에 서 있는 작은 매실나무에 매화가 피었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국도로 길을 잡길 잘 한 것 같습니다. 꽃이 길을 열고 있습니다. 꽃이 여는 길을 따라 우리가 남행합니다. 아직 산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강변은 벌써 봄빛으로 설레고 있습니다. 버들강아지도 통통하게 물이 올랐습니다. 강둑에 서 있는 버드나무도 연둣빛 물이 올랐습니다. 마른 겨울을 지나서인지 강은 좁은 줄기로 흐르고 있습니다. 강이 좁아지자 고운 모래가 하얗게 드러나 있습니다. 좁은 강물은 도란도란 흐릅니다. 구례를 지나자 강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넓어진 강물은 덤덤하게 흐릅니다. 윤슬, 덤덤한 강물위에 햇빛 조각들이 반짝입니다. 강은 바다를 향해 흐르고,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더 느리게 흐릅니다. 花開장터에 다다랐습니다. 꽃이 열리는 장마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싸가지고 간 찰밥과 겉절이, 파나물로 햇빛이 마구마구 쏟아지는 쌍계사 입구 개울가에서 햇빛을 등지고 둘러 앉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버너에 불을 피워 보이차도 다려 마시고, 사과도 깎아서 한쪽 씩 후식으로 먹었습니다. 햇빛은 아쉬운데 갈 길이 멀어 자리를 걷었습니다. 최 참판 댁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평사리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토지]의 배경이 되는 평사리엔 보리가 파랗게 자라고 있습니다. 발아래 악양 들판은 아직 텅 비어있습니다. 텅 빈 들판 위에 봄빛이 가득합니다. 바람은 고요합니다. 참판 댁 아랫마을은 상가가 성업 중입니다. 현대와 옛날이 함께 상생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세트장이었던, 참판 댁 소작농들이 살던 동네와 집들이 그저 남아 있습니다. 저쪽 골목에서 아픈 사랑을 하던 월선네가 조붓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올 것만 같습니다. 강청댁의 악다구니도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 같구요. 참판 댁 사랑 마당에도 봄빛이 가득합니다. 그 봄빛 속에 누군가가 굴렁쇠를 굴리고 있습니다. 박경리 문학관으로 오르는 대나무 숲길은 한적합니다.
	우리 집 레베카가 10년 만에 歸家? 歸鄕? 歸島? 했습니다. 뭐, 어쨌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 날 고민하고 기도하고 결정해서 집으로 왔습니다. 레베카가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그득해졌습니다. 밥상도 풍성해지고 이야기도 풍성해지고, 웃음도 풍성해졌습니다. 레베카의 소일거리로 강아지도 한 마리 들였습니다. 밥 주고 똥 치우고, 오는 날부터 레베카의 강아지 뿌꾸의 시중은 끝이 없습니다. 그나마 아직 추워서 목욕은 못 시키고 있지만 따뜻해지면 목욕 시중까지 들어야겠지요. 뭐, 그것도 레베카가 원해서 하는 것이니 즐거운 일이 되겠지요. 우리 집 레베카 대학에서 상담심리와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대구에서 정신보건사회복지사 2급 수련을 마치고, 취직하겠다는 것을 레베카의 아버지가 섬으로 불렀습니다.
	이새의 장성한 세 아들 엘리압과 아비나답, 삼마는 사울을 따라 전쟁터에 나갔고 아직 미성년자인 막내 다윗은 필요에 따라 사울 왕에게로 오가며 베들레헴에서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새는 전쟁터에 있는 형들의 안부 알아 오라고 다윗에게 음식을 들려 심부름을 보냅니다. 이새는 왜 굳이 꼬두람이(막내) 다윗을 전쟁터에 심부름을 보냈을까요? 이새에게는 다윗 위로 네 명의 아들이 더 있었는데. 다윗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다윗은 소임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볶은 곡식과 떡과 치즈를 가지고 형들의 안부를 살피러 엘라 골짜기로 갑니다. 다윗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대치한 전장에서 형들을 만나 문안합니다. ‘마침’ 그때, 싸움을 돋우는 자가 나와서 전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댑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이 거인 때문에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골리앗의 위협 앞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 거인이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는 소리를 다윗이 듣습니다. 다윗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에게 의분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 거인과 싸우기로 작정합니다. 그 누구도 그 거인과 싸워 볼 용기를 내보지 못하고 있는데 다윗이 싸울 의사를 나타내자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 왕 앞으로 데리고 갑니다. 사울은 다윗이 결코 골리앗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울의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사울은 인간적인 눈으로 골리앗을 봅니다. 그러나 다윗은 강한 확신을 가지고 골리앗에 대한 승리를 장담합니다. 다윗은 믿음의 눈으로 골리앗을 봅니다. 다윗은 체험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양을 사나운 맹수들로부터 건져내도록 도우신 하나님 사자와 곰의 발톱으로부터 다윗을 건지신 하나님 위기 때에 만난 하나님이 계십니다. 목동인 다윗은 양을 치면서 체험한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오만불손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블레셋 사람인 골리앗을 이기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실 것을 다윗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들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사람을 기다리셨습니다. 골리앗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싸울 믿음의 전사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백성에게 보이시려고 엘라 골짜기로 부르셨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에 충실해서 엘라 골짜기에 왔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승리자로 세우시려고 엘라 골짜기로 부르셨습니다. 다윗은 ‘마침’ 그때, 시간 맞춰 엘라 골짜기에 왔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하나님의 전사로 세우시려고 엘라 골짜기로 부르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의 말을 듣고 의분에 휩싸입니다. 엘라 골짜기의 전투는 다윗의 데뷔 무대가 됩니다.
	남해의 바다는 보얀 안개 속에 숨었습니다. 사천을 지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바짝 마른 겨울을 지나면서, 물 걱정을 했는데 비가 내립니다. 산에 들에, 바다에도 섬진강에도 약비가 내립니다. 비가 여는 길을 따라 우리는 서북진합니다.
	레베카는 선유도에서 1년간 한글학교를 할 것입니다. 글을 모르는 섬 할머니들을 위해서 레베카가 공부하는 동안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였던 섬 할머니들을 위해 레베카가 대학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공부해서 남 주는’ 첫 번째 일을 레베카를 키워준 선유도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어공부 방을 운영할 것입니다. 레베카 자신처럼 초 미니학교에 다니고 있는 선유도의 아이들을 위해 영어가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즐거운 영어공부 방을 시작합니다. 선유도, 레베카의 엘라 골짜기입니다. 지금 선유도는 봄기운이 충만합니다. - 류순화(한국섬선교회 ▼)